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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가 싸우는 법, '부인'과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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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에서 부인과 항변의 차이를 가르치면서 소개했던 드라마 '도깨비'의 두 장면이다. 여주인공은 원래 태어나기 전 엄마의 뱃속에서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으나, 도깨비의 도움으로 저승사자를 피해 살아간다. 저승사자는 10년쯤 후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자 그녀를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여주인공은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다면서 자비를 베풀 것을 간청했으나, 저승사자는 매정하게 거절한다. 그때 삼신할머니가 나타나 저승사자에게 저승명부에 여주인공의 이름이 있냐고 묻는다. 원래 태중에 죽을 운명이었던 여주인공은 명부에 ‘무명씨’라고 적혀 있을 뿐이어서 저승사자는 그냥 물러가고 만다. 

 

10여년 후 저승사자는 이제 명부에 이름이 등재되었다면서 여주인공을 데려가려고 한다. 여주인공은 또 조실부모와 사고무탁을 주문처럼 외친다. 그때 여주인공을 사랑하게 된 도깨비가 저승사자라도 도깨비 신부를 데려갈 수는 없다면서 여주인공을 자신의 신부라고 선언한다. 저승사자는 이번에도 여주인공을 데려가지 못한다.

 

이 상황을 법적으로 해석해 보자. 첫 번째 조우에서 삼신할머니는 저승의 법에는 ‘명부에 이름이 있을 것’이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법률요건임을 알고 있어서 저승사자의 주장에 대해 ‘부인(否認)’을 하였고, 저승사자는 그 증명에 실패해서 여주인공을 데려가지 못했다. 두 번째 조우에서 저승사자는 법률요건을 증명하였으나, 도깨비가 ‘도깨비 신부는 저승사자라도 데려갈 수 없다’는 저승의 법을 이용해 여주인공이 자신의 신부라고 ‘항변(抗辯)’을 하였고 이를 증명하여 저승사자의 시도를 저지하였다. 안타깝게도 여주인공의 주장인 조실부모와 사고무탁은 저승의 법과 무관하여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법률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법적 문제에 닥쳤을 때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조실부모와 사고무탁을 외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관련된 법률과 제도를 잘 알고 있는 법률가는 정밀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살펴서 법률요건의 흠결을 지적하면서 부인하거나, 다른 법률규정에 따라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저지할 항변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이 법률가를 찾는 이유이고 법률가가 법을 공부하는 이유이다.

 

 

박광서 고법판사 (수원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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