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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체르노빌, 코로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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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 있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원자력발전소의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했다. 발전소 책임자들은 원자로 폭발의 증거를 애써 외면하고 사고를 단순 탱크 폭발로 치부하며 서로에게 사고의 책임을 미뤘다. 직원과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방사능 방호복도 없이 사고 수습에 투입되었고, 그들 중 수십 명이 방사능 피폭으로 3개월 이내에 사망했다. 

 

사고 당일 저녁 2차 폭발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 원자로 폭발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으나 지휘권을 넘겨받은 소련 정부는 여전히 이를 숨겼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한 채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사고로부터 36시간이 지나서야 인근 주민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버스에 태워진 주민들은 3일 후에는 돌아올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이틀 후인 28일 아침 스웨덴에서 방사능이 감지되자 스웨덴 정부는 소련 정부에 사고 여부 확인을 요청했다. 소련 정부는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28일 밤 비로소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하여 원자로 1기가 손상되었고 사고 수습 중’이라는 짤막한 공식발표를 했다. 그 사이 소련과 유럽 주민 다수가 히로시마 원폭 400배에 달하는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수개월 후 오염된 원자로에 거대한 석관을 씌우는 미봉책으로 방사능 누출을 막고 나서야 비로소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사고 후의 조사에서 소련 정부는 사고가 단순한 인간의 실수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년 후, 원자로 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었는데 이를 KGB가 기밀로 봉인함으로써 관계자들이 결함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중국의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를 두고 ‘중국의 체르노빌’이라고들 한다. 정부 관계자의 책임 회피와 은폐, 비밀주의, 언론 통제가 사태를 악화시켜 급기야는 도시 전체의 폐쇄에 이른 현 상황이 체르노빌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이웃나라의 위기를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 우월감을 느낄 만하다. 감염 경로와 확진자의 동선은 상세하게 공개되고 있고, 확진자 수는 아직 주변국가보다 적은 편이며, 국민들도 비교적 차분하게 안전수칙에 따르고 있다. 정보를 숨기는 것이 더 큰 혼란과 불신을 가져온다는 메르스 때의 교훈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재난에 대처하는 방식이야말로 그 체제의 수준을 드러내는 지표다. 국정의 어떤 분야이든, 문제가 터지면 일단 불리한 정보를 은폐하고 비판자의 입에 재갈을 물려 상황을 모면하려는 유혹이 존재한다. 국론의 분열을 막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그 유혹은 파국의 단초다. 

 

진실의 공개는 시끄러운 의견의 표출을 낳을 것이다. 일처리가 더디고 번거로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환장 파티가 바로 민주주의다. 정보를 통제하고 비판을 억누르며 권력을 독단적으로 행사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체르노빌에서 목격했고, 지금 우한에서도 목격 중이다.

 

 

한애라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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