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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란 이름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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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소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는 어느 날 갑자기 체포가 되어 있었다. 흔히 인간을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하는데, 시민들은 누군가의 고소나 고발로 인해 갑작스럽게 소송이라는 상황 속으로 내던져진다. 

 

“무죄가 되어도 상관없다. 오직 그(녀)가 고통 받기를 바랄 뿐”이라는 의뢰인의 분노에 변호사의 묵인 내지 방조(!)가 더해지고, (ⅰ) “사기죄의 기망은 반드시 중요부분에 관한 허위표시임을 요하지 않는다”(95도2828), (ⅱ) “사기죄는 현실적으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것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2003도7828), (ⅲ) “업무방해죄의 성립에는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할 필요는 없다”(2006도1721)와 같이 한없이 가벼운 판례들을 이용(!)한다면, 어제까지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던 시민을 소송이라는 늪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한번 소송에 내던져진 이상 그곳에서 마음대로 벗어날 수는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은 요제프 K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감시원들은 “당신은 이곳을 떠날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된 것이오”라고 말할 뿐이다. 

 

법 앞에서 오로지 ‘사실’만을 말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냐 싶지만, 역사가 주목하는 ‘사실’은 “내 방에 탁자가 있다”는 ‘과거의 사실’이 아닌,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와 같은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카, '역사란 무엇인가’), 법과 정의의 여신은 오로지 ‘법률적 의미를 갖는 사실’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리하여, 가끔 법정에서는 모든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인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소송’이란 이름의 늪에 빠뜨리게 하는 것은 마치 ‘깃털’과도 같이 가벼운 일이지만,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한 사람의 삶의 무게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일이다. 

 

계절이 지나가고 있는 이 밤에 우리가 쉽게 고소장을 작성하지 못하는 까닭은, 단순히 법률지식이 부족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끔 ‘소송’이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슬픈 사람의 뒷모습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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