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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Wahrheit Macht Fr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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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달 23일 만장일치로 미얀마 정부에 대하여 로힝야족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 등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감비아는 2019년 11월 이슬람협력기구(OIC) 국가를 대표하여 미안먀를 제노사이드 협약위반으로 제소하였고, 미얀마는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까지 직접 변론에 나서 이를 극구 부인하였는데, 국제사법재판소는 임시 조치 요청을 우선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지난달 27일은 소련군이 폴란드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얼마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기념식에 참석하여 1백만 명이 죽어간 아우슈비츠의 진실이 왜곡되고 있는 정치 상황을 걱정하였다고 한다. 즉, 러시아는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폴란드 스스로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가 홀로코스트를 방조하였다는 주장 자체를 범죄로 만드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처럼 특정 국가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은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당시 제노사이드는 특정 민족이나 종교, 국적을 가진 집단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범죄로서 일부 국제법 학자와 검사들에 의하여 도입이 주장되었으나, 최종 판결에는 포함되지 아니하였다. 식민지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두려워 한 강대국들의 소극적 태도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지만, 제노사이드가 ‘민족’과 같은 집단에 초점을 맞추는 ‘생물학적 사고’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당시의 유력한 국제법 학자 라우터파하트의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보인다. 그는 국제법이 집단보다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여야 한다면서 ‘인도에 반하는 죄’의 적용을 주장하였고,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결국 제노사이드는 이후 1948년 협약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져 국제형사범죄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ECCC에서 제노사이드로 기소된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라우터파하트의 우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제노사이드로 인정되기 위해서 검사는 ‘집단을 파괴할 의도’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가로 주장, 입증하여야 하는데, 그 특별한 의도를 증거로 인정하는 것이 극히 어렵거니와,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집단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하여 분쟁의 해결이 아닌 고착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종 집단적 사고(in-group favouritism, groupthink)에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하고, 이에 군중심리의 전형적 특성, 즉 과장된 감정과 비이성적 확신, 책임감 부재 등(Gustave Le Bon)이 더해지면, 르완다 제노사이드에서 나타나듯이 혐오선동(hate speech)만으로도 끔찍한 대량학살 범죄를 저지르는 존재이다. 

 

티모시 스나이더는 폭정(tyranny)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전문직 집단 자체의 윤리를 강조하면서, 만일 그들이 감정과 윤리를 혼동할 경우 종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까지 말과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고 한다. 지금도 아우슈비츠의 정문에는 성경 문구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중 ‘진리(Wahrheit)가 ‘노동(Arbeit)’으로 바뀐 채 걸려 있다(Arbeit Macht Frei). 누구보다도 법률가는, 집단 감정을 비롯한 불합리한 사고에 갇혀 진실의 추구를 도외시하지 않을 것이 요청되는 전문직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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