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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미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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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어느 시골에서 65세의 이씨가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고 도주했다. 차에 치인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는데, 하필 바로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이웃인 동갑내기 김씨의 아내였다. 

 

판사는 이씨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자 이 뻔뻔한 이씨는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500만원을 공탁한 것으로 입을 싹 닦고 말았다. 그리고 재판부는, 유족과 합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초범이고 노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이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이후 이씨는 김씨를 슬슬 피해다녔지만, 한 날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대문 앞에서 딱 마주치고 말았다. 김씨는 이씨를 보자 “이 살인자!”라고 외치며 따귀를 갈겼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던 이씨는, 폭행과 명예훼손으로 김씨를 고소했다. 

 

나는 검사실에서 이씨와 마주앉아,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 일말의 미안함과 자책감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씨는 적반하장격으로, 김씨에 대한 말도 안되는 험담을 지루하게 늘어놓으며 김씨를 엄벌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마치 술취한 사람이 구토하듯 김씨에 대한 미움을 한껏 토해 냈지만, 나는 어디에서도 그 미움의 정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

 

나는 이씨가 어떤 마음으로 김씨를 미워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했고, 역겨웠다. 받아 마땅한 비난을 덜어보려고 없는 미움도 만들어 내는 비겁과 구차함. 남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자기 손톱에 가시 박혔다고 큰소리치는 후안무치함. 그건 60 넘은 노인이 한순간 오판으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아마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비겁하게. 그러나 사건과 사고를 계기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저 이웃들에게는 그만그만한 평범한 노인이었을 것이다. 

 

이씨에게 손찌검한 김씨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하고 사건을 종결하였지만, 그 사건은 뒷맛이 너무 썼다. 형사사법제도는 이씨에 대해 교과서에서 말하는 형사처벌의 존재 이유 중 응보도 위하도, 그 어떤 효과도 달성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의 가슴에 더 큰 생채기만 남겼다.

 

무엇보다도, 나는 근거 없는 ‘미움’이 비겁과 구차함, 자기변명의 오물 가운데서 거품처럼 생겨나 세상에 남겨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오늘날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우리 사회를 뒤덮은 혐오와 미움은, 진정 근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씨의 것처럼 거품에 불과한 것인지.

 

 

정유미 부장검사 (대전지검)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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