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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이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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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를 실현하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법학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이런 요건을 갖추면 저런 권리가 발생하는지, 여기서 왜 이런 논의를 하는지 등에 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법조인이 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법학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비교적 최근 육아를 위해 아들과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그 의문에 대해 약간의 답을 얻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래동화는 비슷하다.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착한 심성을 가진 나무꾼이거나 농부이고, 악당은 욕심 많은 부자이거나 폭정을 저지르는 권력자다. 주인공은 기지를 발휘하거나 선행을 베풀어 고리채의 굴레에서 벗어나거나 악당을 혼내 준다.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베니스의 상인과 같은 소설도 약속대로 살 1파운드를 떼어주는 것보다는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통쾌함을 느끼고 교훈을 얻는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것들을 마음속으로부터 정의라고 여기고 있었는 듯하다. 

 

현행 법률은 어떠한가? 전래동화와 같은 상황을 법률적으로 보면 헌법상 저항권의 행사,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 또는 형법 제20조의 정당방위에 해당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러한 상황 자체가 예외적이고 실무상 만나기도 쉽지 않다. 약속을 잘 지키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의 요건과 효과를 익히는 것이 법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정의를 위해 약속을 무효로 하거나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것은 예외적이거나 소극적으로만 허용된다. 

 

결국 약속이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라거나 약속을 이행하더라도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식의 나의 정의 관념은, 약속을 잘 지키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에 관한 학습에 방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난관을 뚫고 법조인이 되어 일하고 있는 지금, 처음 품었던 정의에 대한 나의 열정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을까?

 

 

박광서 교수 (사법연수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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