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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소가(訴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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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50년 걸렸네요. 수백억을 줘도 자유와 바꾸지 않을 겁니다.”

 

50년 만에 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되찾는 순간, 70대 할머니 의뢰인께선 자유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소감을 내뱉으셨다. 할머니는 배우자의 통제와 폭력으로 50여 년의 혼인 생활 동안 사소한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고, 잠자는 순간까지도 흉기를 머리맡에 두고 위협을 가하는 배우자에게 자녀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설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유난히 보름달이 밝았던 어느 밤 할머니는 성인이 된 자녀들과 가정폭력피해지원단체의 도움으로 비닐봉지에 슬리퍼 달랑 하나 넣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 쉼터에 숨어 이혼소송을 시작하셨다.

 

이혼전문변호사로서 다양한 이혼 사건을 진행해 왔지만 가장 긴장되는 사건은 가정폭력이 병합된 이혼소송이다. 장기간 가정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학습화된 무기력과 배우자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신뢰관계자나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 이혼을 결정하거나 소송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가족들을 소유물로 취급하며 통제하고 집착해왔던 가정폭력 행위자들은 가출 후 소송을 제기하는 배우자에게 극도의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소송 직후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보복이나 살해당할 위험은 급증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이혼 사건에서 가정폭력피해자들은 위자료를 받기보다 안전한 이별에 우위를 두고 소송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자유의 소가(訴價)는 산정할 수 없겠으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했던 소송물은 ‘자유’였다. 여러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할머니는 안전하게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자녀들의 도움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가정폭력피해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쉼터에 거주하며 심리상담과 교육을 통해 자립을 위한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재판부는 할머니의 안전확보를 위해 분리조정을 통해 피고와의 대면을 최소화하면서 조정 전후 보호관을 배치해 주거나, 조정기일마다 안전귀가 확인 전화까지 하며 피해자 보호조치에 힘썼다.

 

이 사건 관계자들이 한마음으로 염원했던 이 사건 청구 취지는 “피고는 원고에게 50년간의 자유를 안전하게 반환하라”임이 틀림없다.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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