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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Independen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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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형 국제재판소인 ECCC의 수사판사는 국제 및 국내 수사판사 2인의 공동 체제로 되어 있다. 지난 2017년 5월 공동 수사판사들은 비공개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당시 만성적인 예산 부족으로 ‘사법 독립성 유지’와 공정한 재판의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함에 따라 수사절차의 영구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당사자들과 사법행정당국, 그리고 UN과 캄보디아 정부 측에 이에 대한 의견을 밝힐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즉시 언론에 유출되었고, 1심 재판부의 국제재판관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이러한 결정은 행정 문제인 예산 부족을 판사의 사법적 권한을 이용해서 비공개적으로 해결하려 한 것으로 적법절차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비판이 뒤따르자 결국 2017년 8월 수사판사들이 수사중단 결정을 추후로 연기하겠다고 한 발 물러서면서 일단락되었다.

 

ECCC 수사판사실의 기이한 행태는 2018년 8월 각자 명의로 단일 사건을 동시에 기소 및 불기소하는 전대미문의 최종 결정을 내림으로써 절정에 달하였다. 관계법규상 공동수사판사는 합의에 의해 사건을 처리해야 하고, 합의가 어려울 때에는 전심재판부에 사건을 회부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위법하고 무책임하지만 손쉽고 빠르게 임무를 마치는 방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한 명의 피의자가 단일 혐의에 대하여 동시에 기소와 불기소가 된다는 그들의 결론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으며 재판소의 설립목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법률가로서의 명성이나 경력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형식적으로는 길고 복잡한 법적 논증으로 이루어진 결정문을 통하여 결론을 내리면서 상급심의 통제마저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교묘하게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는 외부로부터 민감한 영향을 받는 수사절차를 ‘독립성’이라는 두터운 보호를 받는 조직에 독점시킴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파생상품 중개인으로서 늘 자신의 잘못된 결정의 대가를 치르는 삶을 살아 왔던 나심 탈레브와 같은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 아무런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에게 타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결정을 맡기는 유형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서 잘못된 것이다(스킨 인 더 게임).

 

법관의 독립성과 그 판단의 책임성을 균형 있게 확보하는 일은 극히 어렵다. 특히 법관이 운동경기의 심판처럼 규칙만 공평하게 적용하면 된다는 전통적 사고가 도전을 받고 있는 요즈음에는 그 책임성의 범위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사회 이래 형성된 남성 중심 법 체계를 변함 없이 ‘중립적으로’ 계속 적용하는 법관, 피고인의 권리를 위주로 설계된 전통적 형사소송법 체계에 충실한 나머지 피해자의 이해관계를 도외시하는 법관이 있는 경우 어느 정도까지 비판이 허용될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는 법관 개인의 지속적인 성찰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법관은 사법 독립의 우산 아래 안주하기 보다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사회통념’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법관의 이러한 성찰을 돕기 위한 동료 및 외부의 상시적인 비판과 자극 또한 필수적이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좋은 재판을 구현하기 위한 어렵지만 핵심적인 과제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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