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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멋진 나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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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맡았던 사건이다. 재산이 제법 있던 역술인이었는데, 생전에 자식들과 교류가 없었고, 피고가 그와 한 집에서 살며 비서 역할을 하였다.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지만 피고는 역술인이 죽을 때까지 그의 일을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 건강을 돌보고 재산을 관리하였다. 역술인이 죽자 자식들이 나타나 고인의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생전에 피고 앞으로 이전된 금전 등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다. 고인과 피고 사이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피고의 주장이 허위인 것 같지는 않았다. 변호사들만 출석한 상황에서 변론기일이 몇 차례 속행된 후 조정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상속 관련 분쟁인데다가 피고가 고령의 여성인 점을 고려하면 조정이 성립할 것 같지는 않아 별 기대 없이 조정실로 향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조정실에 먼저 와 앉아 있던 피고는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나 말투, 태도가 단아하고 맑은 분이었다. 고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고,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한편 부끄러워하였다. 심정적으로는 피고의 입장이 이해가 가나 증거만으로 판단하는 판결에 의하면 피고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며 납득했다. 살아온 시간이 긴 당사자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판사이기는 하지만 피고보다 한참 나이 어린 조정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려는 자세에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처럼 살아오다가 이제 와서 상속분을 주장하는 약간은 괘씸한 원고들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피고의 양보로 조정이 성립되었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인데 해가 지날수록 권위적인 사고에 익숙한 소위 ‘꼰대’가 되어가는 게 아닌가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조정실에서 마주한 어르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배우려는 마음, 겸손한 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 내면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나이를 부끄럽지 않게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물이다.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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