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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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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세월의 흐름에 무감각해진 탓에,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지난 세월을 헤아려 보지만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17년 전 사법연수생 시절 보았던 기억보다 부쩍 크고 울창해진 사법연수원 경내 수목들만이 지나간 세월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줄 뿐이다.

 

그동안 법조인으로서 나는 저 수목들만큼 성장했는가? "부장판사쯤 되면 기록 위에 손만 올려놓아도 결론이 보인다"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지금쯤이면 재판이 훨씬 쉬워지고, 사건이, 세상이, 모든 것이 더 또렷하게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재판은 갈수록 더 어렵고,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당사자들이 제출한 과거의 편린들을 이리저리 맞추어 봐도 진실은 그 모습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단단한 땅에 굳게 뿌리박고 있는 줄 알았던 '헌법과 법률', '양심'이라는 기준조차 한순간에 위태로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이해관계의 대립은 더 첨예해졌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대립은 분쟁의 종착점이 되어야 할 사법적 판단조차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들이 법관에게 거는 기대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주요 사건에서 법관의 심판은 다시 한번 여론의 심판을 받는다. 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과거에 통용되던 많은 기준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수많은 의문을 던진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나의 어깨를 점점 더 무겁게 누르고, 때로는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길에 갈 곳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다 지금까지 시간만 흘렀다.

 

이제는 안다. 시간이 저절로 훌륭한 법관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묘약이 아님을. 또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매 순간 헌법과 법률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고,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탐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오만과 독선에 빠져서도 안 되고, 세상의 변덕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려서도 안 된다는 것을. 새해에는 나, 그리고 모든 법조인들이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시간만큼 성장하고 발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김규동 판사(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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