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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종강씨와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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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씨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문자를 보냈다. 어느 해는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라는 시를 보내주었다. 이 시는 한 줄 띄고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로 마무리된다(반칠환 ‘새해 첫날’). 

 

종강씨는 목 아래를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뛰거나 걷거나 길 수 없는 그가, 바위 같은 그가 먼저 도착한 세상이라! 십년 전 그를 처음 만났다. 은평구 어느 시설에 살고 있던 그는 열아홉에, 기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열 살 때 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구술기록에서 그는 “나를 버린 아버지… 열 살의 어린 나보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자신이 없었던… 나보다도 아픈 나의 아버지”라고 표현하며 아버지를 용서했다(서중원 기록, ‘나, 함께 산다’). 그 대목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종강씨는 나와 같은 연배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은 시대를,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산 그의 삶과 내 삶이 자주 비교되었다. 그가 보낸 긴 문자 편지를 보고 어떻게 문자를 쓰는지 궁금했다. 그의 침대에는 얼굴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아래 핸드폰을 놓고 볼펜을 물고 여러 시간 동안 입으로 입력한다고 했다. 책도 그렇게 읽는다고 했다. 목 아래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목 위의 기능이 남은 것은 축복이었을까? 인생의 대부분을 누워 지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독서와 사색, 기도 같은 그런 일상이었을까? 

 

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때마다 나는 그의 이야기와 글로 마무리하곤 했다. 특히 '죽기 전에 꼭 할 일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좋아했다. “혼자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에게 살아 있을 이유를 준다. 악어 입을 두 손으로 벌려 본다. 누군가의 발을 씻어 준다. 달빛 비치는 들판에 벌거벗고 누워 있는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에게 열 장의 엽서를 보낸다. 다른 사람이 이기게 해준다. 아무 날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낸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다.” 데인 셔우드라는 사람이 쓴 글이라 한다. 이 글을 받은 뒤 하나씩 실천해보려고 노력했다.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러보고 아들을 앉혀놓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친구에게 별 일없이 꽃을 보내고 다른 사람이 이기는 것을 축하해주었다.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조금은 엉뚱하고 또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사람이 한 생을 사는 동안 꼭 해봐야 할 일 몇 가지는 계획을 세워 실천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요? 해보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 중에 일등은 고마우신 분들께 은혜 한 번 갚는 일인데 아무래도 제 처지에 어려운 일이지요.” 늘 감사하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그다운 결론이다.

 

그의 문자가 끊겨 얼마 전 연락을 했더니 많이 아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시설에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종강씨는 내 인생의 스승이다. 난 그의 글을 읽고 아름다운 햇살과 한강에 반짝이는 잔물결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가 아프지 않고 매년 성탄에 아름다운 문자를 보내기를 기다린다.

 

 

임성택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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