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취재수첩

[취재수첩] '령(令)치주의'의 한계

158093.jpg

성경에 따르면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보카드네자르 2세(B.C 605~562)는 어느 날 모든 백성에게 금으로 만든 신상에 절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유대인 출신의 현인 3명이 왕명을 거부하고 뜨거운 불속에 던져졌지만,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다.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왕은 다시 조서를 내려 이번에는 유대인의 하느님을 높이지 않는 자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다니엘서 3:29).

 

절대 군주가 자신이 내린 왕령을 하루 아침에 뒤집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모습은 바빌로니아 뿐 아니라 앗수르, 히타이트 등 고대 근동 제국의 공통된 특징이다. 법적 안정성 없이 권력자가 그때그때 내린 '행정명령'에만 의존해 국정이 좌우되던 이들 제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잊혀졌다. '법치(Rule of law)'를 선택한 로마가 2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버틴 사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전체주의의 폭력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보루이다. 민주적 합의를 통한 입법과 법률에 근거한 행정은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제도임이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따라서 어떤 정권이든 민주와 법치라는 헌법 이념의 토대를 스스로 허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개혁이란 이름 아래 법률로 정해야 할 사항까지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으로 밀어붙여 법치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법률신문 12월 12일자 1면 참고> 원로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아 국회로 보냈을 때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타협과 절충을 통해 나라를 이끌라고 한 것"이라며 "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측이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결국 반(反) 법치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법치주의의 위기는 국정 운영의 난맥상과 결합해 파시즘의 창궐이나 국론분열 등 총체적 난국을 야기할 수 있다. 정부가 행정입법이라는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여야 '협치'와 '법률우위 원칙'의 확립이라는 정도(正道)를 걸어야 할 이유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