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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조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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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는 그래서 피해자를 주먹으로 때리지 않았나요?”

피의자 : 이 때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묵묵부답하다. 

지방법원 형사항소부 판사로 있을 때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에서 본 묘사다. 

 

변호사 시절 읽은 피의자신문조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피의자는 피해자로부터 금전을 편취하였지요?”

“아닙니다.”

“정말 아닌가요?”
“사실은 제가 편취한 것이 맞습니다.”

 

“정말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고 해서 부인하던 피의자가 바로 진실을 털어 놓았을 것 같지는 않다. 셋째 줄에서 넷째 줄로 넘어가기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처럼 과연 진술을 그대로 정리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조서를 두고 법조인들은 농담 삼아 '조서문학'이라고 부른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이렇지 않았나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한편으로 보면 이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랬습니다”라고 답했는데, “이랬습니다”라고만 조서에 정리되면, 딱히 틀린 것은 아니어도 진술취지와는 큰 거리가 있다. “당시 이런 일이 있었지요?”라는 질문에 “사실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이러저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라고 답하였는데, 조서에는 “이러저러했던 것 같습니다”라고만 정리되면, 어느새 의견이 아닌 사실의 진술이 되어 버린다. 

 
피의자신문조서는 수사기관이 만든다.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소한 사정들은 빠지고 불리한 내용은 강조된다. 수사 받는 처지에 불리하게 정리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고쳐 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결국 피의자는 정말 잘못된 곳 한두 군데를 수정하고 조서 말미에 하고 싶은 말 몇 마디를 추가하는 정도로 타협해 버린다. 수사기관에 밉보이면 수사범위가 확대되거나 구형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다. 독자는 수사기관의 프레임으로 완성된 조서문학을 읽으면서 어느새 유죄의 심증을 가지게 된다.

 

조서로 재판하지 말고 판사가 심판을 보는 공개법정에서 피고인과 검사가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공판중심주의이고 직접주의다. 형사소송법상으로도 법정진술이 원칙이고 조서는 예외이며, 법원이 검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할 길도 열려 있다. 법으로 인정된 권한을 제대로 쓰지 않고 조서문학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용인한 것은 법원의 책임이다. 

 
경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처럼 검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도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면 바로 증거능력을 없애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옳고 피고인은 거짓말을 한다는 법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무슨 법을 어떻게 바꾸든 조서문학의 유령은 형태만 달리하여 다시 출몰할 것이다.

 

 

한애라 교수 (성균관대 로스쿨)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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