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양형으로 확증되는 법관의 양심과 사법정의

157930.jpg

이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형의 양정(量定) 시간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만큼 시리디 시린 고뇌의 연속일 것이다. 수동적이었고 특혜도 없었다는데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감히 대통령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겠어, 압박으로 와 닿지 않았을까, 국가대표 기업총수가 경영에 손 놓으면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 ‘신경영 비전제시’, ‘정경유착 방지책’과제를 잘 해 오고 ‘준법감시’ 주문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반성의 기미, 낮은 재범의 위험성, 피해회복 등등의 긍정적 양형인자를 내세우며 집행유예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러다가 재벌총수 앞에서만 작아지는 사법부라는 비판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있겠나. 또 다시 살아난‘재벌 3·5법칙(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돈에 팔린 사법정의 등등. 무엇보다도 특검이 소환한 헌법 제11조는 어찌할 것인가. 귓가에 맴도는‘평등’과 눈앞에 어른거리는 ‘정의’의 여신상을 어찌 내칠 수 있겠는가.

 

피고인에게는 유무죄가 중요하지만, 유죄가 인정된다면 어떤 종류의 형벌이 어느 정도 부과될 것인지, 선고된 형벌이 집행될 것인지 등 형의 양정에 관심이 쏠린다. 형벌의 종류와 양은 피고인의 자유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자신의 삶, 기업인이라면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관에게도 중요하다. 형사사법정의의 실현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양형을 통해서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관이 공정한 심판자적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법관의 양심이 확증되고 사법정의가 실현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형과정은 법적 정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법적용이 아니라 법관의 자유재량에 속하는 영역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양형을 법관의 개인적 직관과 당해 사건의 전체적인 인상에 맡겨버려서는 안 된다. 개인적 경험, 출신계층, 성격, 가치관 등 주관적인 요인에 의하다 보니 개인적인 편차의 폭이 생기게 된다. 언론매체 등의 사회적 여론이라는 법외적 요소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면 결국 공평하고 적정한 양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양형기준제가 도입되고 시행된 배경이다. 양형기준의 시행 효과로 양형편차가 줄어들고 양형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기업의 횡령·배임범죄에 관해서는 실형선고가 증가하는 등 엄격하고도 공정한 양형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재벌 봐주기 판결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면서 양형기준에 따른 실형선고의 양형실무가 형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조짐이 보인다. 사법부가 여전히 재벌총수를 구속하거나 실형을 선고하면 재벌이 위기에 빠지고, 국가경제가 흔들린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사법부의 기업범죄에 대한 인식을 가늠할 시금석이다.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암울한 역사와 고리를 끊어 낼 절호의 기회에 경제정의와 공정사회로 가는 이정표가 될 것인지 결말이 궁금하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