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아이러니

157682.jpg

나는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알고 싶었다. 이왕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알고 싶었지만, 현재를 잘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 일어나는,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온갖 세상사에 관하여 나에게 해명이 필요하였다. 내가 온전히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우리집 그녀에게 그녀가 이 넓은 세상을 즐겁게 누비며 살길 바라는 내 희망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 그녀에게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집 그녀도 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알게 된 인간 세상의 원리 중 하나는 방어적으로는 자기보호, 공격적으로는 자기이익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세상을 보고들을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정의와 공정도 자기보호와 자기이익 추구의 수단이었다.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야 했던 사람은 정의와 공정을 칼과 갑옷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세상을 자기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싶었던 사람은 정의와 공정을 내세워 동조하는 사람들로 세력을 만들어 움직였다.

 

자기보호와 자기이익은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것은 아니었다. 존재의 근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인간은 주어진 생명에 대한 최선의 도리를 다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었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로 자기를 보호하고 이익을 추구해야 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해야 했고,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정의와 공정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평화는 그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다시 돌아와 정의롭고 공정한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 외에는 고귀할 것도, 비난받아 마땅할 것도 없었다. 그저 욕심이 넘쳐 생존에 필요한 자기보호와 자기이익의 선을 넘으면 그 대가를 치르고 말 뿐이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이렇게 절제를 요구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는 우리집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그녀에 대한 내 희망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박지연 고법판사 (서울고법)

미국변호사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