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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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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다운증후군 증세가 있는 ‘정’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기 어려웠지만, ‘정’이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매일 챙겨주는 ‘한’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정’이 전교 꼴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친절한 선생님이 ‘정’에게 사지선다 시험에서 모든 문제에 “③”번만이라도 답 표시를 하라고 하셨고, ‘한’도 ‘정’이 선생님의 말씀대로 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연습을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한’은 ‘정’을 여러 가지로 챙겨주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보호해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다른 친구들이 놀리거나 심한 장난을 칠 때에 그냥 지켜보거나, 오히려 ‘한’이 ‘정’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했으며, 가끔 심하게 대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였다. 그럴 때는 ‘정’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한’은 ‘정’을 여느 친구와 다르지 않게 대하였던 것이었다. ‘정’은 오히려 ‘한’과 같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같게 대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고, 그럴 때 더 자연스럽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1988년 여름, 아버지께서 올림픽경기 표가 아닌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경기 표를 주셔서 친구들과 함께 갔었는데, 생소하면서도 뜻깊은 경험이었다. 그 때 운 좋게 외국 선수들과 어설픈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밝은 표정 속에서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실제 자연스럽게 체험하니, 그들의 모습이 가슴 속에 더 오래 남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평소에 왜 이들을 자주 보거나 만나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 어느 TV드라마(응답하라 1988) 중 ‘주인공(덕선)이 같은 반의 반장이 간질 증세를 보이자 긴급구호를 하고 반장을 양호실로 데려다 주었는데, 점심시간에 깨어난 반장이 창피해하며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하면서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친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대하고 도시락도 그 반장과 함께 나누어 먹는 장면’에서는 픽션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나라에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등 관련 특별법들이 있다고는 하나, 이러한 법령만으로는 위와 같은 각 상황에서 완벽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모두 ‘장애인’으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법과 정책·제도는 최소한의 보장 및 인프라일 뿐이며, 오히려 ‘(우리는) 다르지 않다’, ‘모두 함께’라는 인식의 전환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머릿속 관념이 아닌 자연스러운 경험을 통해 생활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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