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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위한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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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에서 피고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바로 실형 선고일 것이다. 중형이 예상되는 죄를 저지른 피고인은 말과 표정, 태도에서 초조함과 절실함이 역력히 느껴진다. 특히 1심에서 모든 범죄 사실을 순순히 자백하고 선처를 구하였음에도 실형 선고를 받고 항소한 구속 피고인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처를 구하기 위해 이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합의서나 공탁서를 제출하거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반성문이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게 전부다.

 

예전에 형사항소부의 배석판사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구속 피고인의 기록을 무심코 넘기다가 그의 아내가 써낸 탄원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탄원서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필체로 된 문단이 여러 차례 번갈아 쓰여 있었는데, 읽어보니 피고인은 아내에게 탄원서 쓰는 방법을 자세하게 일러 주고, 아내는 그 아래 공백에 피고인이 알려준 대로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는 내용을 써 놓은 것이었다. 순간 “이게 뭐지? 왜 이런 걸 제출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으나, 이내 알게 되었다. 피고인의 아내가 잘 몰라서 피고인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공백에다가 탄원서를 작성하여 그대로 제출하였다는 것을.

 

피고인이 쓴 ‘탄원서 작성법’은 매우 자세했다. “재판장을 호칭할 때는 항상 ‘존경하는’과 같은 존경의 수식어를 붙일 것”, “선처를 탄원하기 전에 먼저 재판부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전하고, 이때 주심 배석판사님에 대한 감사도 빠뜨리지 말 것”부터 시작하여 기승전결의 각 단계별로 들어가야 할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은 “되도록 자주 탄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되,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계속 제출하거나 너무 많은 탄원서를 한꺼번에 제출하면 바쁜 판사님들이 읽지 못할 수 있으니 매번 내용을 조금씩 바꾸고 여러 번에 나누어 제출할 것” 정도의 설명으로 끝났던 것 같다. 그 사건에서 탄원서 한 장이 갖는 의미에 비추어 보면 실로 대단한 정성이었다.

 

이것이 비단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피해를 구제받기 위하여, 침해된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혹은 범죄에 대한 죗값을 받기 위하여 각자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안고 법원에 온다. 재판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당사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김규동 판사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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