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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국내법과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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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년 몽골의 제4대 몽케 칸이 고려에 대한 항복을 받아내고 남송으로 원정을 떠났다가 진중에서 병사하자, 몽케 칸과 함께 원정군을 이끌던 쿠빌라이와 수도를 지키던 아리크 부케 간에 칸위계승 전쟁이 일어났다. 고려 태자 왕정(후의 고려 원종)은 몽케 칸에게 입조하기 위해 갔다가 졸지에 두 명의 후계자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얄궃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데, 결국 몽골의 수도 카라코룸에서 부족장회의인 쿠릴타이를 통해 대칸으로 선출된 아리크 부케 대신에 남송원정군이라는 몽골의 주력부대를 지휘하던 쿠빌라이를 선택했다. 당시 정통성이 약했던 쿠빌라이로서는 큰 힘을 얻어서 몽골의 제5대 칸에 오를 수 있었고, 고려는 몽골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고유의 풍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국제정치에서 명분보다는 실리가 앞선다는 교훈을 역사적으로 보여준 한 단면이다.

 

때로는 국내적으로 법과 정의에 따라 내린 판결도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대법원의 작년 징용배상판결도 한가지 예이다. '국제법과 국내법 중 어느 법이 우위인가', 또 '한일청구권협정의 해석과 관련 대법원의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중 어느 것이 옳은가'라는 이론적 논의를 떠나서, 국내 재판이 외교에 미칠 영향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징용배상판결은 외교적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쟁점화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이 경제적으로 도발하게 한 빌미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는 적지않은 일본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왔고, 역대 일왕들이나 총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과거사에 대해 주기적으로 반성을 표명해왔다. 위안부 문제까지만 해도 그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징용배상판결을 빌미로 이러한 한일관계의 기조를 뒤집어 버렸고, 한국을 국제법을 무시하는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들고 있다. 한일관계에서 과거와 같이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국내재판에 있어서 판결이 가져올 외교적 결과에 대해 사법자제설 등에 입각해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박근수 법무사 (서울중앙회)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