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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우리 민법전의 명백한 오류

본보가 창간 70주년을 맞이해 '발언대'코너를 신설합니다. 이 코너는 법률과 법이론을 비롯해 법원 재판(판례 포함), 검찰 수사, 변호사·법무사 실무,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점들을 독자들이 직접 전달함으로써 우리 법률문화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입니다. 발언을 원하시는 분은 법률신문 편집국 이메일(desk@lawtimes.co.kr)로 원고를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바랍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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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출발점이 된다는 것은 모든 법률가가 잘 아는 바이다. 이른바 ‘문언 해석’은 사비니가 말한 이래 두루 받아들여진 법률 해석의 4가지 기준에서 맨 앞에 오는 것으로서, 우리 대법원도 같은 취지를 누누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 법전에 명백한 잘못, 예를 들어 문법적 오류가 있다면 어떨까? 우리 민법전도 이를 피해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제201조는 타인 소유의 물건을 권원 없이 점유하여서 이를 반환하여야 하는 사람이 그 무단점유 중에 물건으로부터 수취한 과실의 반환에 관한 문제, 즉 이른바 점유자의 과실반환의무를 규율하고 있다. 이 문제는 로마법에서부터 다루어졌던 것인데, 제201조는 점유자가 선의인지, 악의인지에 따라 이를 달리 정한다. 악의의 점유자에 관한 제2항은 '수취한 과실을 반환하여야 하며 소비하였거나 과실로 인하여 훼손 또는 수취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과실의 대가를 보상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 후단이 악의 점유자가 과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가액을 금전으로 보상하여야 하는 경우를 정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과실로 인하여 훼손 또는 수취하지 못한 경우'라는 부분은 이를 그대로 읽으면 과실로 인하여 훼손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가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이 된다. 이는 당연히 부당하다. 훼손 못하여 아직 남아 있다면 과실은 원물대로 반환되어야 하여서 가액반환이 문제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부분은 '과실로 훼손한 경우'라고 일치하여 해석되고 있다. 

 

이 규정이 문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과실로 훼손하였거나 과실로 수취하지 못한 경우'라고 정하였어야 했을 것이다. 만일 '과실로'의 반복을 피하고자 한다면, '과실로 인하여 수취하지 못하거나 훼손한 경우'라고 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참고로 일본민법 제190조 제1항은 '過失에 의하여 훼손하였거나 또는 수취를 게을리한 果實'이라고 한다. 

 

위 규정 부분은 애초 민법안이 1954년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안될 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제190조 제2항). 그런데 민법안에는 제대로 되어 있던 것이 나중에 잘못 간 경우도 있다. 제176조는 소멸시효 중단효가 있는 압류 등 사유가 누구를 당사자로 하여야 하는가를 정하여, '압류, 가압류 및 가처분은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에 대하여 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그에게 통지한 후가 아니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란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음을 전제로 하여서 이제 시효의 중단이란 논의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민법안 제168조는 위 부분이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라고 하여 제대로 되어 있었다(이에 대응하는 일본민법 제155조는 '시효의 이익을 받는 자'라고 한다). 우리가 가지는 민법안 심의자료로서 무게가 현저한 '민법안심의록'에도 그렇다. 국회의 심의과정에서는 이에 대하여 논의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국회를 통과한 민법을 공포하는 단기 4291년 2월 22일의 관보에는 앞서 본 대로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늘 보는 법전 등에도 으레 제176조가 그렇게 실려 있다.

 

민법은 기본적 법률이라고 한다. 1948년 9월 15일, 즉 정부 수립 직후에 공포된 대통령령 제4호의 '법전편찬위원회직제'는 제2조에서 그 임무를 '基礎法典 …의 초안을 起草, 심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론 민법 등을 염두에 두었다. 우리는 그때와는 달리 이제 세계에서 열 몇 번째의 나라가 되었다고 자랑하는데, 기본 법률에서 그야말로 기초적인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않는다고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정도는 사소한 것이니 그것을 굳이 들어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일까?

 

 

양창수 석좌교수 (한양대·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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