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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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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지금 네 나이를 몇 살로 느끼니?” 러시아에 사는 서른 다섯 동갑 친구인 이고르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 스물 일곱 정도?” 옆에 있던 한 살 어린 알렉산더는 아직 스물 두 살 정도로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는 세월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청춘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김광석, ‘서른 즈음에’ 中). 어느 노 교수는 젊은 시절 “하아나-두우울-세에엣-네에엣-다서엇-여서엇-일고옵-여더얼-아호옵-여어얼” 가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는 “핫-둘-셋-넷-닷-열” 간다고 했다. 천천히 걸어오던 세월은 어느새 전속력으로 달려 오고 있다. 연수원 때 수저를 돌리던 우리 막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늙어가는 것은 다르다. 축구선수는 서른을 넘기면 은퇴를 고려한다고 하는데, 불혹이 지난 대박이 아빠는 아직도 경이로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원서를 직접 보고 싶다면서 독일어를 공부하러 다닌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생은 배우는 시기와 일하는 시기로 나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일을 하면서부터 더 이상 새로운 지식을 찾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에는 매년 새로운 교과서도 사고, 대법원 사이트에서 판례도 찾아 보았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함께 한 책들이 아직도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고, 최신 판례인 줄 알았던 것들이 몇 년 전에 선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선생은 인생에서 전성기는 예순에서 일흔 다섯 정도였다고 회고한다(‘백년을 살아보니’ 中). 그러면서 아직 일흔은커녕 예순조차(!) 되지 않은 젊은 우리에게, 조금씩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성장을 게을리하는 ‘젊은 늙은이’가 되지 않도록 늘 경계할 것을 당부한다. 선생의 말처럼, 우리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 아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아직 어린 우리는 언제 불쑥 찾아올지 모르는 전성기를 대비하여 열정적으로 일하고, 읽고, 배우고, 놀고, 여행하고, 만나고,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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