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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널다리' 밑의 잠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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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분사무소 낸 로펌들이요? 사실 카카오나 넥슨 같은 대어(大魚)를 노리지, 스타트업 지원은 그냥 겉치레 아닌가요?"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한 로펌 분사무소들을 취재하기 전 서초동에서 만난 어느 변호사가 한 말이다.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살뜰한 자문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기업·중견기업을 염두에 두고 내려갔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해들은 한 대형로펌 판교 분사무소 변호사는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우리는 지금의 카카오, 넥슨이 아니라 10년 뒤 카카오, 넥슨이 될 기업을 만나러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교(板橋)라는 지명은 마을 개천 위에 주민들이 왕래하기 위한 '널다리(너더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제2의 구글과 넷플릭스를 꿈꾸는 인재들이 모인 첨단도시로 탈바꿈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혁신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는 모험가들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젊음을 밑천 삼아 바이오, 신소재,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광산에서 금맥을 찾는다.

 

4자리수 암산까지 척척 해낸다는 이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바로 계약과 법률해석이라는 규범의 영역이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고도, 계약서 문구의 법률적 의미를 제대로 몰라서 쩔쩔매다 로펌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자칫 잘못 서명했다간 공들여 개발한 기술을 눈앞에서 뺏기거나 지극히 불리한 '노예약정'에 시달릴 수도 있다.

 

조중일(38·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세종 판교 분사무소 변호사는 "스타트업을 상대할 때는 사후적인 자문 결과를 던지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자주 대화하며 예상 가능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기업과 투자자를 이어주는 '파이프라인'으로서, 후원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올바른 법률조언을 제공할 법률가를 만나지 못하면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날 수 있다. 널다리 밑의 잠룡(潛龍)들이 준비된 러닝메이트의 도움을 받아 솟아오르길 기대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