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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단상(Ⅴ)

[국민참여재판 단상(Ⅴ)] 편견의 늪, 선입견의 나락

배심원단의 성향을 정확히 예견할 초능력은 누구도 갖고 있지 않아
전문적 질문기법 등 연구개발로 편견·선입견에서 자유로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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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 그 용어와 의미가 등장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화제가 되었다.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다고도 하나, 일부 학자는 이를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고 한다. 이 대법원 판결은 대학교수의 학생들에 대한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등이 문제된 징계처분 관련 행정소송 사건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즉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하며,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성폭력 형사사건에서 같은 법리가 대법원 판결로 확인되었으며 다수의 하급심 실무에 적용되고 있다. 알 듯 말 듯 다소 생소한 개념인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대법원 판결 요지를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결국 편견과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극히 상식적일 뿐 아니라 종래부터 법관이 당연히 유념해야 할 덕목이지만 특히 성(性)과 관련한 문제가 개입된 사건의 심리에 있어 의외로, 아직까지도, 본의 아니게 지켜지기 어려웠던 부분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나아가 성폭력 사건에서 자주 문제되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이라는 틀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한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일정 사유가 있는 경우 법원은 피고인의 신청이 있더라도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하는 배제결정을 할 수 있다. 성폭력범죄로 인한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경우 등이 그 사유이다. 강간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고 피해자도 이에 동의하여 성폭력범죄에 해당되는 사안임에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50대 여성으로 모처에서 영세한 규모의 주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그 주점에 심야에 들어가 술을 마시다가 피해자를 내실로 끌고가 강간하였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고 성매매를 한 것이라고 다투었다. 결국 증인으로 나온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증거로 제출된 한 장의 사진이 예상외의 반응을 가져왔다. 바로 주점 외부의 모습이었다. 피해자가 운영하는 주점의 외부 창문은 광고 문구가 기재된 불투명한 스티커로 전체가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 주점은 억울하게도 사진 한 장으로 은밀하게 성매매를 하는 곳이 되었다. 피해자의 직업이 그 낙인에 쐐기를 박았음은 물론이다. 피고인이 자신의 지갑을 가져간 것으로 의심한 피해자가 절도죄로만 신고를 하였다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비로소 성폭력 관련 부분을 고소하였다거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직후의 피해자가 주점에서 나가는 피고인을 향해 술값을 내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자연스럽게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배심원들이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어려운 개념을 저울질하기에는 고정관념은 무섭게도 너무 단단하고 평의 시간은 야속하게도 너무 짧다. 일생 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형성된 성(性)적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하루 아침에 바뀐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법관도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훈련과 검토에 들이는 넉넉한 시간이 이러한 치우침을 조금은 희석시켜 주고 있다. 편견과 선입견에 노출된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사건이나 증거의 내용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참 어렵다. 배심원단의 성향을 정확히 예견할 초능력 또한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의 심리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은 이미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배심원 선정단계에서의 전문적인 질문기법 및 효율적인 기피제도의 개발이나 사안을 깊게 꿰뚫어 보는 재판부의 적절한 배제 결정의 활용이 절실하다. 다방면의 연구와 노력으로 간혹 편견의 늪과 선입견의 나락에서 헤매는 사건을 구해낼 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이러한 한계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일보할 수 있다면 더욱 다행이겠다.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 one point 법령 해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9조(배제결정)
① 법원은 공소제기 후부터 공판준비기일이 종결된 다음날까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아니하기로 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3.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
4. 그 밖에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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