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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 앞의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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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업무 중에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거의 없으나 그 중 변사사건은 진정 곤혹스러운 일이다. 혹시 사망에 관여가 된 범죄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철저히 확인해야하기에 기록을 잘 검토하여야 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현장에 가서 시신의 상태도 직접 살펴야 한다. 

 

오래되어 부패한 시신을 접했을 때에는 ‘해부하기 싫어 의대에는 절대 안 간다’ 했던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한 경우도 있었다. 

 

경력이 쌓이고 삶의 무게가 느껴지면서 변사 사건 중 자살 사건이 더욱 부담이 되었다. 규모가 되는 검찰청에서 당직을 할 때에는 하루에 변사 사건이 여러 건 들어오기도 하는데 유서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 내용에 영향을 받아 울컥하거나 우울해지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렇게 내게 영향을 끼치는 만큼, 깊이 생각하고 배우는 것도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들이 삶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가.' 그러면서 배운 내용 중 하나이다. 

 

젊은 여성의 변사 사건이 배당되었다. 남녀가 육체관계를 맺어 여성이 임신을 하였다. 여성이 그 사실을 알리니 남자는 헤어지자고 통보한다. 그런데 그 남자의 마지막 말이 “이제 그만 엔조이(enjoy) 하자”였다. 무책임한 말이다. 여자는 마음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긴 그 마지막 말, “이제 그만 인조이 하자”는 문장을 유서 마지막에 반복하여 적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여러 번 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유서 뒤에 붙여 놓았다.

 

남자가 변사 사건의 참고인으로 조사 받으면서 한탄하여 조서 말미에 “결국 내가 너를 죽였구나”고 자필로 적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많이 늦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중략)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 3장)

 

일반인들도 혀를 잘못 사용하면 귀중한 생명까지 죽이는 독이 될 수 있는데, 말로 먹고 산다는 법조인들은 얼마나 더 그러할까. 말을 한 번 뱉어 설화(舌禍)가 되면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법무연수원에서 신임검사들에게 “검사의 말은 오죽하겠나. 검사로 하는 말이 끼치는 영향을 잘 새기고, 내 말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말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여러 번 가르치게 된다.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편 141장 3절) 

 

밖으로 나가는 말의 근원이자 뿌리가 되는 내 마음도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성식 부장검사 (법무연수원 법무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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