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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중국 시안(西安)에 다녀온 신동찬 변호사

진시황 무덤의 ‘테라코트 戰士’들… 진나라 將兵의 위용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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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교외의 진시황 병마용 유적지. 춘추전국시대를 끝장낸 강대한 진의 장병들의 위용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안에서 만약 단 하나의 유적만 둘러 볼 수 있다면 이곳을 추천하겠다.

 

중국 시안(西安, 서안)은, 고대 서주(西周) 시절 호경(鎬京)이라 불리우며, 처음으로 중국 중앙 왕조의 수도가 된 이래, 최초의 통일 왕조 진(秦)나라 때는 함양(咸陽), 전한(前漢)과 당(唐)대에는 장안(長安)이라고 일컬어진 도읍이었다. 이 장안이라는 시안의 옛 명칭은 아시다시피 결국 전근대(前近代) 동아시아에서 수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이렇게 시안은 유서 깊은 유적들이 많은 명소라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금년 5월초에 둘러 볼 수 있었다.


‘廬山’ 전체가 하나의 무덤

거대한 스케일에 놀라


시안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는, 교외에 있는, 중국 첫 황제인 진시황(秦始皇)의 무덤을 지키는 용도로 빚게 한 병마용(兵馬踊) 유적지이다. 이 테라코타 전사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며, 춘추전국시대를 끝장낸 강대한 진의 장병들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내가 여기를 찾았을 때에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는지라, 제대로 경탄할 새도 없이 정신 없이 감상하였다. 아마도 시안에서 단 하나의 유적만 찾아야 하는 바쁜 관광객이라면, 이 병마용을 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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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뒤 산으로 보이는 곳이 진시황릉인 여산릉이다.

 

 하지만, 서안의 진시황 관련 유적 중 개인적으로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무덤인 여산릉(廬山陵)이었다. 『초한지(楚漢誌)』의 영웅인 항우가 진시황 사후 약탈했다는 이 진시황릉을 병마용 유적지 방문 후 찾았는데, 경내에 들어서고도 진시황 무덤을 도저히 발견할 수가 없었고, 진시황릉임을 알리는 비석만 덩그러니 서있어서 갸우뚱했다. 그런데, 실은 비석 뒤의 산이라 생각했던 것이 진시황의 무덤임을 알아 채리고 중국의 스케일에 정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무덤 내부는 유적의 추가 파손을 염려해서인지 현대에서는 발굴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1970년대 발견 이후 아직까지도 계속 발굴 중이라는 진시황 병마용과는 또 다른 의미로) 대륙의 만만디 정신도 새삼 느꼈다.

  

중국 최초 모스크인 청진사,

회교도 거리는 인상적 


시안에는 중국 당나라대 유적도 많이 있는데,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인 『서유기(西遊記)』중 삼장법사의 모델인 현장 스님이 천축국(지금의 인도)으로 실크로드를 통해 떠났던 자리에 세워졌다는 대안탑과, 당 태종이 조선 태종처럼 형제의 난을 일으켰던 장소인 현무문터도 이번 여행에서 둘러 보았다. 그러나,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중국 최초의 모스크인 청진사. 내가 중동에서 3년 파견 근무를 한 탓인지 이슬람교 예배당격인 이 청진사에 꼭 들리고 싶었는데 작은 소원을 푼 셈. 이름부터 절이라 붙인 것에서 드러나듯이 건물 자체도 불교 사원을 방불케하는 이 청진사에는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이 모인다고 하며, 근처는 중동식 음식과 특산품을 파는 (중국식으로 말하자면) 회교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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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모스크인 청진사의 고즈넉한 경내. 중국 전통 양식 건물인 것이 이채롭다.

 

시안은 이렇게 고대에서 중근세에 이르는 중국사의 주요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이 있게 한 결정적 사건 중의 하나인 서안사변(西安事變)이 1936년 12월 12일(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 1979년에 일어났던 12.12 군사반란 사건과 같은 날에 일어났고, 일종의 병간-兵諫-이라는 점에서도 두 사건이 닮아서 흥미롭다)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서안사변이 일어난 장소는 당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었다는 화청지(華淸池)인데, 화청지 내 숙소에서 장학량-양호성이 이끄는 동북군과 서북군에게급습을 당한 장개석이 산속 깊이 숨었다가 이튿날에나 발견되었다는 장소에 세워진 병간정(兵諫亭)에는 시간도 늦고 길이 험해 오르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밤사이에 이리 멀리 도망간 것을 보면 장개석은 천상 무인이었나 싶기도 하고, 그런 출중한 무인이 대륙을 공산당에게 다 빼앗기고 일패도지하여 대만으로 쫓겨난 것을 보면 역시나 민의를 제대로 받들지 못한 지도자의 최후를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서안사변의 무대인 華淸池에는

양귀비 흔적만 남아


시안에는 삼성전자 공장도 있어서인지 주요 유적지에는 한국어 설명도 병기 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대안탑 인근에는 한국식 분식집도 위치하고 있어서 나 같은 입 짧은 아재가 허기를 달래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다(물론 뱡뱡면이라 불리는 넓은 면발의 싼시성 특유의 국수도 즐겨보시기 바란다). 유구한 중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훑어 볼 수 있는 시안 여행을 꼭 한 번 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신동찬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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