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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단상(Ⅳ)

[국민참여재판 단상(Ⅳ)] 진술 증거,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형사재판의 유무죄 최종결론은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서 좌우
법관의 일이 그래서 더 무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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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는 진술만 있고 증거가 없습니다.” 하루 종일 한 일이 증인신문인데 배심원들이 평의 끝에 이렇게 말한다. 오후 내내 누군가의 진술을 들은 것도 같은데 다 소용이 없다니 도대체 오늘 뭐를 한거지? '물적 증거 없이 진술로 유죄 확정, 성인지감수성 때문?', '피해자 말만 듣고 판결했나, 논란 가속' 이러한 문구의 기사가 머릿속에 오버랩되면서 어딘가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의 증거가 되나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자판을 몇 번 두드리니 이러한 질문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같은 맥락이다. 말이라는 게 쉽게 바꿀 수 있는데다가 처음부터 꾸며내는 것도 자유로우니 엄정한 법정에서조차 대접받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기억력의 한계는 또 어떤가. 각자의 입장에 따른 아전인수식 해석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철학적 접근을 방패막이로 삼으면 그만이다. 법률문외한인 배심원들이 누군가의 진술을 웬만하면 믿을 수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느끼더라도 무리가 아니다. 이 시점에서 진술 증거, 그 존재의 가벼움을 재판에서도 감수해야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뇌리를 스친다. 형사재판은 다른 종류의 재판에 비하여 증인신문 등 진술을 듣는 절차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등장인물이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건의 경우 증인 수십 명 이상을 놓고 어느 증인이 언제 나올 것인지 달력을 사이에 둔 재판부, 검사, 변호인의 회담이 수차 진행되기도 한다. 증인이란 법원에 대하여 자기가 체험한 사실을 진술하는 제3자를 말하고, 증인으로부터 그 체험사실의 진술을 듣는 절차, 즉 증인에 대한 증거조사절차를 증인신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다가 사실관계의 확정에 사용되는 자료를 ‘증거’라고 한다는 점을 더해보면, 증인의 진술은 증인신문이라는 방법을 통해 조사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통상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사건에서 ‘증인 000의 법정 진술’이 유죄 판결 ‘증거의 요지’란의 제1번 타자인 것을 보면 형사재판에서 진술 증거, 특히 증인의 진술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법도 하다. 한편 진술 증거와 관련해서는 영미 증거법에서 유래한 전문법칙(hearsay rule, 傳聞法則)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법칙이란 경험자 자신이 직접 법원에 진술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간접적으로 보고하는 형식을 취한 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증거법칙을 말한다. 그런데 전문법칙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면 실체적 진실 발견이나 절차의 신속성을 저해하게 된다. 따라서 전문법칙은 예외를 전제로 발달한 이론으로서 예외 확장이 전문법칙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다. 일례로 전문증거인 피해자나 참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쓸 수 없지만 예외적으로 이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피해자나 참고인을 법정에서 신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핵심은 피고인에게 반대신문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만 나와 있던 상황에 반대신문에 의한 탄핵이 추가되면서 피고인의 절차적 만족감이 높아지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증인신문 과정에서 사건에 관한 가치 있는 추가 정보를 얻은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사건마다 과학적 증거나 물증이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성폭력 사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 둘만이 현장에 있었다면 증거로 될 수 있는 것은 아쉽게도 피해자 진술뿐일 수 있다. 결국 진술 증거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기에 일반화된 기준 제시가 매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판례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진술의 일관성ㆍ구체성, 경험칙에의 부합 여부, 물증 또는 제3자의 진술과의 부합 여부 등 진술의 신빙성 판단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그 무엇도 의미하지 않는 가벼움과 니체의 철학에 등장하는 영원회귀의 무거움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진술 증거, 그 존재 자체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형사재판에서 진술의 신빙성 판단이 유무죄의 최종 결론을 이끈다는 것을 생각하니, 니체 철학의 심오한 의미까지는 몰라도 진술 증거를 다루고 판단하는 법관의 일이 오늘따라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다가온다.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 one point 법령 해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1조(배심원의 절차상 권리와 의무
) ①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은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할 수 있다.
1. 피고인·증인에 대하여 필요한 사항을 신문하여 줄 것을 재판장에게 요청하는 행위
제44조(배심원의 증거능력 판단 배제)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은 법원의 증거능력에 관한 심리에 관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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