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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관 기피 신청에 법원은 유연한 태도 보여야

‘가습기 살균제’ 사건 1심 재판부가 결국 변경됐다. 당초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일부 피고인이 “재판장의 배우자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어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피신청을 내자 이들에 대한 재판을 정지했다. 그러나 기피신청을 하지 않은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한 공판은 그대로 진행해 논란을 빚었다. 법조계에서는 “기피신청 사유가 모든 피고인들에게 공통적인 문제인데 기피신청에 대한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굳이 분리해 재판을 진행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재판부는 재배당을 요청했고, 법원장은 관련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형사23부가 이 사건을 재판하게 했다.<본보 2019년 10월 14일자 1면, 24일자 2면 참고>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법관기피제도는 악성 당사자의 재판지연책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실제 전국적으로 기피신청이 인용되는 비율은 채 0.1%도 되지 않았다. 기피 신청이 재판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거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어 당사자들이 제도 이용을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피 제도는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헌법이 선출되지 않은 법관들에게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권을 맡긴 것은 법관 선발에 있어 민주적 정당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사법권력의 공정한 행사라는 가치를 구현하기에는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헌법은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법관이 헌법과 양심에 의해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만약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그 공정성을 의심받는다면 법원이 보유하고 행사하는 사법권의 정당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재판은 공정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도 올해 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는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기피신청을 기각한 원심 결정을 파기하면서,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가질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을 때에는, 실제로 법관에게 편파성이 존재하지 않거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피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대법원 2019. 1. 4.자 2018스563 결정). 법원은 재판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해소하고 당사자로 하여금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진행되리라는 신뢰를 갖게 할 필요가 있다고 대법원은 강조했다. 

 

‘법관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가 재판부와 개인적인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때에 재배당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많은 법원이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사건배당과 재배당을 실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법관 기피 제도가 일부 당사자들에 의해 절차 지연의 목적으로, 또는 일방적인 재판부 변경의 수단으로 남용돼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기피신청이 재판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진다거나 무조건 기각돼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법원이 재판의 공정성 확보라는 가치를 위해 기피 제도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자세를 가져주길 바란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