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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Anger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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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초청을 받아 참가한 적이 있다. 공항에 도착하니 회의 대행사 직원이 나와 있었고, 그의 안내에 따라 차를 탈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런데 지하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운전기사가 나오는 길을 착각하는 바람에 10여분 이상 길가에 짐을 든 채로 서서 기다리게 되었고, 필자는 좌불안석이 된 그 젊은 직원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벼운 대화를 이어나가려 노력하였다.

 

며칠 후 회의를 마치고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에 그 직원이 다시 동행하였다. 그는 필자에게 왜 그때 화를 내지 않았냐고 물었다. 자신의 경험상 ‘높은 분’들은 의전상의 문제가 생길 경우 대부분 화를 내는데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유엔에서 근무하면서 그런 사소한 일로 화를 냈다가는 아주 나쁜 평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한국을 방문하여 공식 일정 등에 참가할 경우 행사를 준비한 분들이 혹시 의전상의 문제 때문에 기분 나쁘지 않았냐고 수시로 확인하는 일을 겪을 때마다 상당한 어색함을 느끼면서, 수년 전 한국에서 판사로 근무할 때는 그러한 문화를 전혀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유엔 직원이 공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Competencies)과 관련한 핵심 가치(Core Value) 3가지 중 ‘전문성(Professionalism)’ 영역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평정심 유지(Remains calm in stressful situations)'라는 항목이 있다. 짧은 영어 탓에 직원들에게 화를 내려는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판결 마무리가 시급한 상황에 휴가 신청을 하면서 필요하면 휴양지에서 원격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사람에서부터,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하여 일할 수 있도록 주말 포함 24시간 사무실 특별접근허가를 하여 달라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각과 업무스타일을 지닌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관리자가 자신의 방식이나 문화만을 고집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연공서열이나 승진제도가 없는 점에서 큰 분위기의 차이를 느꼈다. 유엔에서는 대부분 주요직책에 대해서 모집 공고, 지원서 제출, 후보자 명단 작성, 면접, 평판 조회 등의 표준 절차를 거친다. 다소 느슨해 보이지만 지원자의 평판에 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중요하고,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를 얻을 수 있다. 필자도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로부터 추천서 부탁을 받거나 신원보증인(referee) 중 1인이 되어 채용기관의 의견조회에 응할 경우 내 자신의 평판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한다.

 

얼마 전에는 2년 동안 함께 근무한 직원이 재판소를 떠나면서 갑자기 자신의 나이를 이야기하여 놀랐을 정도로 동료의 나이는 필수 인사정보가 아니고, 매년 2회 인사시스템을 이용해 작성하게 되어 있는 근무평정서는 해당 직원이 평정 내용에 대해 관리자와 대화를 하였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는 버튼을 눌러야만 인사 부서에 전송된다.

 

이러한 시스템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단기 성과를 위해 조직의 건강을 해치는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조직관리에서, 매우 뛰어난 성과를 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내 관계를 해치는 사람은, 결국 저성과자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견해(Conger & Church, 2018)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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