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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이제 ‘증오의 시간’을 멈춰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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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잘 살아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몇 해 전 의뢰인으로 만난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대학시절 연루되었던 사건으로 인해 지난 10여 년 간 끔찍한 증오의 시간을 견뎌왔다. 고작 20대 중반이었던 그녀의 얼굴과 실명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댓글들과 함께 혐오조장사이트와 각종 블로그에 도배됐다. 그녀는 개명까지 하며 그 증오의 대상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지만 유사사건(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면 유사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이 발생할 때마다 그녀와 관련된 글들은 다시 공유되며, 그녀의 인생은 사이버 공간 속 시간의 덫에 걸린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는 ‘증오의 시간’이라는 군중집회가 등장한다. 매일 2분간 할애되는 증오의 시간이 되면, 소설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스크린에 비친 가상의 적을 향해 온갖 분노를 분출해야한다. 매일 2분씩 실체도 없는 가상의 적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대중들은 본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독재 권력에 대한 분노와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의식을 망각해 간다. 설리의 부고 소식과 함께 소설 '1984'의 ‘증오의 시간’이 우리사회에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더욱 슬프고 참담한 것은 고작 20대의 연예인과 여대생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불편과 고통을 주었다고 ‘증오의 시간’의 타깃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지난 10여 년 간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기자로서, 법조인으로서 ‘증오의 시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누군가는 개명을 하고, 누군가는 성형수술을 하고, 누군가는 소송을 하고, 누군가는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는 현장을 목도해왔다. 인터넷 판 ‘증오의 시간’이 진행되는 현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손 내 밀어 주지 못했음을 깊게 반성하며, 참회의 마음을 담아 글을 마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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