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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변호사 임원' 100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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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천하지대본(企業人天下之大本)'

 

서울 을지로 중소기업은행(IBK) 건물 앞 비석에 새겨진 말이다. 국가 생산의 대부분을 사(私)기업이 견인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지난 반세기 이 땅의 경제발전과 빈곤 퇴치에 기여한 우리 기업들의 공은 매우 크다. 

 

하지만 압축성장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단기적인 성과와 실적에 연연한 나머지 투명한 지배구조와 준법경영을 정착시키는 데 소홀했다. 1996년 IMF 사태로 알짜기업 매각과 자본·기술 유출이라는 뼈아픈 실패를 겪고나서야 부랴부랴 컴플라이이언스(Compliance) 개념을 도입했다. 

 

본보가 시가총액 기준 국내 50대 기업의 임원 현황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반기보고서(2019년 6월 기준)를 통해 전수조사한 결과 준법경영의 컨트롤 타워인 '변호사 임원' 숫자가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섰다. 50대 기업 전체 임원의 2.34%에 달하는 수치로, 기업이 그동안 법률가에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2017년 SK하이닉스시스템IC 대표이사로 영전한 김준호(62·사법연수원 14기) 사장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변호사 임원이 '법률사무'라는 제한된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내변호사는 물론 변호사 출신 임원 상당수는 여전히 기업 현안에 대해 법률적인 당부당(當不當)을 판단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임원이라면 리스크 관리라는 수동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경영을 위한 대안과 솔루션(Solution)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내변호사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준법경영의 확산과 사내변호사의 활동 영역 확대를 위해서는 '기업 변호사'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경영 현안 등에 관해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정도경영'을 보필하는 다양한 해법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변호사 출신 임원을 법률리스크 관리나 검·경 등 권력기관과의 관계를 위한 보험용으로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변호사 임원 100명 돌파'가 이제 막 싹을 틔운 기업의 준법의지를 확고하게 자리매김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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