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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단상(Ⅰ)

[국민참여재판 단상(Ⅰ)] 온전한 하루의 열정을 다 바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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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십니다.”

 

지난 2년간 국민참여재판을 담당하면서 매번 재판기일마다 배심원들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날 사건의 심리가 진행되고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마치면 배심원들은 법정에서 나와 평의실로 이동하여 피고인의 유·무죄에 대하여 평의하고 그 의견에 따라 평결한다. 그때부터 그날의 사건에 관한 재판 과정을 몸소 경험한 배심원들이 쟁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설득, 반론을 거치는 등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사건의 난이도나 배심원들의 개인적 성향 등에 따라 평의가 지속되는 시간은 다소 다를 수 있겠으나 항상 생각보다는 열띤 토론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항상 예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 재판부의 경우 저녁 도시락을 먹으면서 평의가 시작되는 사건이 종종 있었는데, 국민참여재판이 있는 날 아침 그날 사건의 절차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머릿속에 펼쳐가며 재판장인 내가 예상해 둔 평의 종료 시각이 평의 시작 시각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으니 시간계산을 잘못한 나의 과오를 탓할 수밖에. 그나마 저녁 도시락을 때 맞춰 도착하게 함으로써 허기가 져 평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민원을 막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언젠가 한번은 배심원들의 평결, 재판부의 합의를 거쳐 오후 7시 전에는 즉일 선고까지 마칠 수 있으리라 자신하였다가 배심원들의 끝장 토론 본능 덕분에(?) 배꼽시계가 알람을 울리고도 한참을 지난 시각까지 밥도 먹이지 않고 혹사를 시킨 결과를 초래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를 국민참여재판 기일마다 반복하였다면 워라밸이 화두인 요즈음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상 국민의 의무를 미끼로 배심원들을 유인한 후 퇴근 시간 이후까지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죄’로 기록될 뻔도 하였으나, 한 번의 과오 이후 재범하지 않고 도시락 뚜껑을 열며 평의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시에 도시락 주문 여부를 결정하는 임무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의 의미를 되새기고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데 이렇게 중요할 줄은 국민참여재판부를 담당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진행하는 형사사건의 쟁점이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선정된 배심원들은 하루를 이렇게 그 사건에 바친다. 평의가 끝나고 재판부가 평결 결과를 건네받는 때가 배심원들이 온전한 하루를 바친 그 열정을 마감하는 시간이다. 나는 평결 결과를 받아든 다음 잠깐의 시간을 들여 배심원들에게 국민참여재판을 경험한 소감을 묻곤 하였다. 예외없이 나오는 말이 바로 “고생하십니다”였다. 배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재판부 판사들은 물론 검사, 변호인이 이와 같이 힘들게 재판을 하는 줄 전혀 몰랐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든 재판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단 하루로 족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다. 공소사실이 몇 줄로 끝나는 사건이라고 해도 재판이 그리 간단히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재판부와 검사와 변호인이 고생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니겠다. 또 여타 사건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오전에 검사의 모두진술로 시작하여 오후에 피고인의 최후진술까지 마치면서 사건 전체가 그날 그 법정에 고스란히 담겼다.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다른 사건에 비해 충실한 구두 변론을 펼친다. 열의 있고 승부욕 넘치는 검사와 변호인이 만나면 드라마에 나올 법한 역동적인 법정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강력 범죄의 피고인에게도 나름대로의 변명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장면에서 느끼는 판단의 어려움도 직접 재판에 참여해 보아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심각한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아픔의 크기도 직접 재판에 참여해 보아야 생생하게 와 닿는다. 배심원들이 재판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고생하십니다”는, 어쩌면 재판을 업으로 하는 판사에게는 과도한 칭찬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는 재판관계자들 모두의 고생으로 얻어진 아주 어렵고 고단한 여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국민을 대표한 배심원들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다면 어쨌든 고생한 보람이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온전한 하루의 열정을 다 바친 배심원들에게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 one point 법령 해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3조(국민의 권리와 의무)
② 대한민국 국민은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제46조(재판장의 설명·평의·평결·토의 등)
② 심리에 관여한 배심원은 유·무죄에 관하여 평의하고,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면 그에 따라 평결한다. 

③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평결을 하기 전에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들어 다수결의 방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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