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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한 마디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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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정책연구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연구이지만, 각종 국가시험의 출제 및 채점 업무도 중요하다. 출제를 위해 기출문제를 검토하다 보면 수험생들은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거의 내 모습도 떠올리게 된다.

 

본의 아니게 신림동에서 여러 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부하는 틈틈이 몇 가지 취미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주로 취미 활동을 하고 틈틈이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집중했던 분야는 만화책이었다. 처음에는 한 곳의 만화방을 애용하다가 너무 자주 가서 창피해지면 두세 군데 만화방을 돌아가며 다녔는데, 이마저 귀찮아지면 독서실에서 가장 가까운 만화방만 갔다.

 

그렇게 취미 활동에 전념하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밤늦게까지 만화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만화방으로 출근을 하였다. 그날의 진도를 계획하고 오전 중에 소화할 분량을 모아 자리에 앉았는데 만화방 아저씨가 커피를 한 잔 타주며 “수고하시네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창피해서 바로 나가고 싶었지만 커피까지 타주셨는데 바로 나가기가 뭣하여 한 시간가량 머물렀다. 그러나 이미 만화책에는 집중이 되지 않았고 빨리 독서실로 돌아가고픈 심정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공부와 취미 사이의 균형을 찾게 되었는데, 오래전의 일임에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내 인생을 바꾼 한 잔의 커피와 한 마디의 말이었다.

 

사법연수생 시절에도 내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한 잔의 믹스커피가 있었다. 한 마디의 말이 있었다.

 

검사 시보 기간, 특수절도로 구속된 피의자가 왔는데 유독 마음이 갔다. 나와 동년배였다. 그러나 가정환경, 밟아온 삶은 많이 달랐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학창시절 서울로 이사하였으나 지방 출신이라고 배척을 당하여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였다. 전과도 여러 번 있었다.

 

만약 내가 그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가 우리 집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장소에 있을까? 있다면 지금의 자리가 그대로일까, 아니면 서로의 자리가 바뀌었을까.

 

점심 식사 직후 제2회 피의자신문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다 그에게도 커피를 마실 것인지 물었다. 수줍게 웃으며 “예”라고 말하던 그가 생각난다.

 

 

정성민 판사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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