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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1억원은 필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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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 지난해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1억원을 청구해 전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 원고와 소송대리인인 나는 일명 "그런 1억원은 필요 없다"는 항소심 소송을 하며 1심 판결을 다시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이 법조인이라면 "항소이익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마땅할 것이다. 원고는 아동기 시절 피고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학대를 당했다. 그로부터 약 15년 후 우연히 원고는 피고와 마주쳤고 정신적 장애가 증폭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아동기 성학대로 인하여 현재까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상해로 하여 피고를 강간치상으로 형사고소하였고 10년형의 유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에 형사판결을 근거로 위자료 1억원을 청구한 것이다.

 

원고가 이 사건을 나에게 의뢰할 때 소송의 목적은 명확했다. 배상금 한 푼 받지 못하더라도 10년이 지난 아동 성폭력 사건에 있어 소멸시효 항변이 배척된 최초의 판결문을 받고 싶다고. 현행 민법 소멸시효 관련 규정에 따르면 10년이 경과한 불법행위에 대하여 민사 책임을 묻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다른 불법행위와 달리 아동성폭력피해자들은 불법행위 당시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성장함에 따라 후유증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와 원고는 아동성폭력의 특수성을 반영한 소멸시효에 대한 판단이 기재된 판결문을 받기 위해 이 소송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하지 아니하여 무변론승소로 1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인정받았지만, 다행히(?) 피고가 항소심에서 소멸시효 항변을 하여 “그런 1억원은 필요없다. 소멸시효 판단이 기재된 판결문을 달라”는 취지로 항소심 재판을 이끌어 우여곡절 끝에 변론이 종결되고 판결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원고를 비롯한 많은 아동기 성학대 피해자들에게 민사소송의 의미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가해자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소송의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가 배제되고 피해자가 회복에서 소외되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1억원의 배상금이 아닌 소멸시효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 기재된 판결문을 원하는 이유다.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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