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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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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여러 일간지에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던 김성환 화백이 9월 8일 별세하셨다. 부고기사를 보자 30년 전 고2 때 어느 가을날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교내 영자신문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선배탐방 코너에서 당시 조선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하시던 김성환 화백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후배들인데 찾아뵙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전화를 드려 약속을 잡았다. 카펫 깔린 신문사 복도로 친구와 둘이 쭈뼛쭈뼛 들어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식이었다.

 

문: 시사만화가 신문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때 기대한 답변의 키워드는 풍자, 비판, 촌철살인 같은 것들이었다)

 

답: 글쎄… 기사만 있으면 딱딱하니까…. 사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 뭐. (끝)

 

김성환 화백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동안 날카로운 풍자만화로 유명하셨기에 우리는 시사만화의 비판적 기능과 풍자적 속성에 대한 풍부한 말씀을 기대했다. 그러나 답변은 계속 이런 식으로 무심하셨다. 인터뷰 컨셉도 안 잡히고 글로 쓰니 재미도 없었다. 


그때는 실망이 컸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니 그런 무심하고 담백한 태도가 이분께서 50년간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수백만 명이 보는 지면에 매일 네 컷 만화를 그려야 한다는 건 대단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만화란 게 빵빵 터지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많을 수밖에 없다. 변호사가 늘 승소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압박감 속에서 하루하루 지면을 채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불타는 열정, 확고한 사명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한 책임감… 이런 것들은 아름답지만 수십 년을 버티는 연료가 되기에는 너무 휘발성과 인화성이 강하다. 오히려 하루하루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하는,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쳐져도 어쨌건 결과물을 내는, 그런 은근한 자세가 반세기 연재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시사만화 없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지"라는 확신에 찬 태도보다 "시사만화가 꼭 필요한 건 아니지"라는 담백한 태도가 오히려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만화가만이 아니라 많은 법률가들에게도 적용되는 얘기가 아닐까?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학자로서 오랫동안 제 구실을 하려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본다.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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