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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공포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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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반세기 넘게 법률 공포를 오해해온 듯하다. 정말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을 ‘공포'하고, 법률은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하면 효력을 발생한다(제53조).

 

여기서 '공포'는 '관보 게재'로 이해되어 왔다. 즉, 이런 등식이 성립한다. 공포(公布)=널리 알림=관보 게재. 헌법교과서를 비롯한 대다수의 법학서적이 그렇게 설명하고 있으며, 실정법인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역시 '공포는 관보에 게재하여 이를 한다'고 규정한다(법령공포법 제11조). 하지만 '공포'와 '관보 게재'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자 다른 작용이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필자는 우연한 계기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6년 이탈리아 국외연수 중 우리 헌법과 이탈리아 헌법을 비교하다가 한 조문에 마주쳤다.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이탈리아 헌법 제73조)'. 우리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달랐다. 이탈리아에서도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는데, '공포(promulgazione)' 후에는 별도로 '공고(pubblicazione)'를 하도록 한 것이다. 시사점을 얻은 김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의 헌법과 관련 법률을 내쳐 찾아보았다. 모두 '공포'와 '공고'를 별개로 규정하고 있었다(프랑스 헌법 제10조, 스페인 헌법 제91조, 독일 헌법 제82조). 

 

'공포'와 '관보게재'는 다른 개념

대통령의 공포는 서명으로 완성

별도로 관보에 게재함으로 공고

 

왜 서구는 구별하는데, 우리는 구별하지 않는가? 하지만 의문을 풀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후 주변의 법률가들에게 물어보고 관련 문헌도 찾아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도 납득할 만했다. 우리에게 오해가 있다는 얘기도 처음 듣거니와, 설사 그렇다 해도 별 탈 없이 실무를 해왔으니 상관없지 않느냐, 잘못된 관행이라 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다시 이 문제를 잊고 있던 중 두 가지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하나는, 이탈리아 헌법 교과서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본인 학자의 글에서 발견한 단서였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한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 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논문과 기고문이었다. 

 

우선, 일본 학자는 이탈리아의 입법 부분 번역에서 한 페이지에 달하는 각주를 별도로 달고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공포(promulgazione)'는 대통령이 법률 제정기관에 의해 제정된 법률을 확인하는 행위(일종의 재가)를 말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공포'라고 하는 것은 '재가'와 '공고'를 포괄하는 것이다. 결국 '공포'는 대통령이 심사하여 서명한다는 '심서(審署)'라고 이해되어야 한다{岡部史郞 역, '이탈리아 헌법입문(1969)'}. 

 

다음으로, 우리나라 학자는 이 문제의 연원과 현황, 그리고 외국의 사정에 대해 풍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 논의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본 헌법의 '공포' 용어를 받아들인 것인데, 실은 공포(promulgation)와 공고(publication)는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용어만을 수입하였고, '널리 알린다'라는 '공포'의 일반적 어의에 끼워 맞추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이해해온 착오를 범하였다. 더구나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은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하는 개악(改惡)까지 하고 말았다{소준섭,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2011)'}.

 

이 발견에 힘입어 다시 공포의 진실에 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공포와 공고를 구분하는 서구의 입법례는 충분하였기에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실정을 주로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일본에서도 한때 혼동이 있었으나, 늦어도 1980년대에는 몇 편의 심도있는 논문을 통해 공포와 공고는 다른 것이라고, '공포'는 '심서'라고, 이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大石眞, '공포재고'(1979), 山本浩三, '법률 심서권 1, 2(1985)'}. 

 

그렇다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보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첫째, 서구의 법적 전통에서 홀로 이탈하게 된다. 공포와 공고를 구분하는 서구의 법률 역사와 법리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선 이론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거나 특유의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관행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점 말고는 정당화 요소를 찾을 수 없다. 

 

둘째, 대통령의 법률안 서명 실무가 이상하게 뒤틀리게 된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법률안 서명에 있어 서명일의 날짜 대신 관보 발행일을 예상하여 그 날짜를 '공포일'로 미리 기재한다(법령공포법 제5조). 예컨대, 대통령은 8월 15일에 법률안에 서명하면서도 그 일자는 8월 19일로 기재하는 것이다(실무상 관보 게재는 발행 3일 전까지 요청해야 함). 이는 과거의 잘못된 실무를 바로잡기 위해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에 따른 것인데, 이 개정 역시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내고만 것이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서명일자를 공란으로 두면 행정직원이 관보발행일에 그 날짜를 기입하였다고 한다.

 

셋째, 대통령의 공포권은 권력분립원칙상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인데 그것이 제약받게 된다. 앞서 본 것처럼 공포일자를 미리 당겨 기재하게 되면 대통령의 법률안에 대한 심사기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포를 요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쯤으로 여겨온 우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공포권의 의미는 자못 중대하다. 권력분립원칙상 법률의 제정은 국회가 하지만 그 법률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즉, 법률은 대통령에 의해 공포(심서)됨으로써 비로소 집행력을 부여받고 실시할 수 있게 되는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편, 공포권은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과 연계되는 것이므로 공포권에 대한 제한은 법률안 거부권에 대한 제한이 된다.

 

작금의 상황은 부끄러운 일이다. 법률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절차로서 엄중하고 정밀하게 처리되어야 할 대통령의 국법행위가 반세기 동안 오해받아온 것이다. 물론 관행대로 해나갈 수도 있다. 관행은 현상을 옹호하므로, 하던 대로 하면 큰 탈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비웃음을 살 일이다. 국가의 뼈대인 법률을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지점에서 실수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리에서 해결책과 대안까지 완벽히 제시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말할 수 있는 것은, '공포'와 '관보 게재(공고)'는 별개인 것이며 대통령의 공포권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대통령의 공포는 서명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고, 그 후에 별도로 관보 게재를 통해 공고되는 것이다. 한발 양보하자면 이 2단계를 모두 합쳐 광의의 공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런 때도 양자가 구분된다는 것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혼란은 외국법의 계수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구의 법제를 일본을 거쳐 들여오면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은 탓이다. '공포'라는 헌법전의 용어를 해석하고 구체화함에 있어 공포(promulgation)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번역어로 채택된 '공포'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상한 관행이 형성되었고, 그렇게 강고해진 관행은 급기야 법률을 개악하게 만들기까지 한 것이다.

 

필자의 지적이 모두 옳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설명이 충분치도 않을 것이다. 지면관계상 19세기 초부터 있은 프랑스와 독일의 헌법 변화와 학설 논쟁은 소개하지 못하였고, 우리 학계와 실무계의 구체적인 논의와 현황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글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향후 활발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김동훈 헌법연구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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