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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臺에서

전하지 못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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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하다보면, 당사자들이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할 때가 있다. 가능하면 진술할 기회를 충분히 주려고 하지만 진행상 여의치 못할 때가 있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는 것이 오히려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어 제지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

 

법정을 나오면서 가끔 생각한다. 판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쉽게 입을 떼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을까.

 

임관한 첫 해에 형사 합의부 배석판사로서 법대에 앉았을 때에는 표정 관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기도 했고, 죄는 지었으나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억지로 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재판장이 되어 재판을 직접 진행하면서부터는 하고 싶은 말을 참기 위한 노력을 종종 하게 된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억울해하는 당사자들을 위로하는 말 한 마디 건네고 싶다가도, 나의 진심과 달리 한쪽을 편든다는 상대방의 오해를 살까봐 입을 닫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생각으로 구체적인 사정과 판단의 이유를 자세히 썼다가 오히려 논리의 흐름에 방해가 될까봐 삭제 버튼을 누른다. 

 

언뜻 보면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법대에 앉아있는 판사들도 매일매일 쉽지 않은 일상을 버텨내는 당사자들과 다를 바 없다. 타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재판의 무게를 알기에,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을 치우침 없이 판결에 담기 위하여 애를 쓸 뿐이다. 재판을 하는 매순간, 사건은 판사가 맡은 수많은 기록 중 하나가 아니라 감히 마주쳐서 풀어내야 할 갈등의 실타래다. 내 것이 아니라 더욱 어렵고, 그래서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다. 결론을 내기까지 그 어떤 표정이나 눈빛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일일이 전하지 못하는 판사의 마음을 판결문이라는 딱딱한 그릇에 힘겹게 담아본다. 말로 다하지 않아도, 판결문 행간에 숨겨진 판사의 마음을 당사자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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