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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제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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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주로 가야겠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젊음을 검찰에 헌신하고 새 출발을 하시는 선배님들의 사직인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가족에 소홀했던 것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고, 가족에 대한 마음 빚을 선제적(?)으로 갚기 위해 제주 근무를 지원했습니다.

 

“제주에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연푸른 곽지해변이었습니다. 제주를 떠나기 얼마 전, 일렁이는 하얀 파도에 종일 몸을 내맡기고, 무료 오션뷰 야외노천탕에서 짠물을 벗겨내고, 보송한 새 옷을 갈아입고 해안가에 차를 세운 후 불그레한 석양을 아내와 함께 바라보던 때였습니다. 

 

“언덕이라꼬 다 같은 기 아이네.” 다랑쉬오름이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처음 오른 오름이었습니다. '오름은 동네 언덕이나 마찬가진데 볼게 있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한 오해였습니다. 연두, 초록 밭고랑을 가르는 현무암 돌담, 그 위를 포근히 감싸안은 푸른 바다와 섬들, 희미한 선을 두고 펼쳐진 하늘과 깃털구름, 그 사이를 치솟는 패러글라이더.

 

물론, 제주에도 매일같이 아름다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밤낮 잊고 일해야 할 날이 적지 않아서 내심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제주 4·3 사건과 같은 가슴 아픈 역사가 숨겨진 곳이 많아 성찰의 계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다랑쉬오름만 해도 다랑쉬굴 안에서 토벌대가 피운 연기에 질식하여 희생된 열한 분의 눈물과 회한이 깃든 곳입니다.

 

다만, 매일 같은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여유가 생겼을 때 언제라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손닿는 곳에 있다는 것은 큰 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여름이 끝나고 곧 가을이 옵니다. 그곳 해변과 석양은 잘 지내고 있는지, 오름과 돌담은 안녕한지 궁금합니다.

 

제주로 가는 모 항공사 좌석 목받이에 씌어진 글인데, 참 공감됩니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中)

 

 

권상대 부장검사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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