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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생활

[나의 문화생활] 제이슨 므라즈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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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의 어느 날, 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때리다 잠시 숨을 고르는지 그럭저럭 비도 더위도 참을만 했던 그 날에 비를 머금어 축축한 저녁 공기를 들이 마시면서 나의 고막남친인 제이슨 므라즈를 만나러 갔다. 


벌써 여덟 번째 내한 공연이라는데, 한 때는 카 오디오에 이 사람 CD 하나만 장착해두고 항상 흥얼거리며 듣고 다닌 때도 있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직접 공연을 봤다. 한참 장마철에 야외공연이라니 비가 많이 와도 하려나? 게다가 전석 스탠딩인데 이 나이에 춤도 안 추면서 서서 공연을 끝까지 볼 수 있을까? 공연 당일까지 이런 저런 걱정을 많이 했지만, 살면서 부딪치는 많은 상황들이 대개 그렇듯이 악조건이라고 생각한 이 조건들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운치를 더해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도심 속 푸른 잔디밭에 앉아서 낮게 깔린 구름, 아파트와 빌딩의 불빛을 배경 삼아 습하고 무거운 공기 속으로 퍼지는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를 듣는 것은 실내공연을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천국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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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한 시간 전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저녁시간이라지만 아직 해가 밝았다. 앞자리에서 완벽한 공연분위기를 즐기기엔 체력이 부족한 나이를 한탄하며, 맨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여러 색깔 페인트붓질을 한 것 같은 무늬의 점프수트를 입고, 트레이드마크인 페도라를 쓰고, 기타를 메고 그가 나타났다. 여전히 감미롭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익숙한 멜로디와 기타 소리에 흥이 오르면서 턱이 까닥까닥, 어깨가 들썩들썩 거렸다. 라이브로 듣는 노래와 기타 연주 다 좋았고, 짧은 멘트로 다음 곡을 연결해 나가는 매끄러운 진행도 참 인상 깊었다. 특별초대손님이 있다고 해서 의아해했더니 갈래머리의 여자아이 손인형을 끼고 나와서 인형극을 하면서 노래를 하지 않나, 밴드 멤버들과 나란히 서서 개다리춤을 추기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Lucky를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부르고,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어 모든 관객들이 음악에 푹 빠져 있을 때 제이슨은 특별한 친구가 또 있다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핸드폰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제이슨 므라즈 노래 중에 제일 유명한 I’m yours. 관객들 모두 같이 부르고 나도 그나마 이 한 곡은 가사에 자신감을 갖고 떼창에 참여했다. 다들 동영상을 찍어 가로화면의 스마트폰 수 백 개 너머로 공연을 보는 것도 장관이었다. 두 시간의 공연이 정말 물 흐르듯 사라락 흘러갔다.

공연 중간에 수차례나 굉음과 함께 음악을 가르면서 머리 위를 지나간 비행기가 방해가 되긴 했는데, 에어플레인에 컴플레인하지 않는다는 제이슨 므라즈의 위트 있는 언급에 관객들도 많이 거슬려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동그랗고 선한 눈을 한 가수가 부드러운 음색으로 사랑과 우정과 긍정적인 인생을 노래해 주니 화도 불만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가수도, 노래 가사도, 분위기도 힐링 그 자체였다. 공연이 끝난 아쉬움에 노래와 분위기가 만든 취기가 또 한 잔을 더 부를 법도 한데 서늘한 듯 푸근한 듯 애매하게 습한 밤공기에 목이 마르지 않아서인지 늦은 밤 한 잔의 유혹을 물리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과하게 흥분하지도 않았고 열기가 터져 나간 것도 아닌데 흥으로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즐겁고 흐뭇하고 따뜻한 감정이 돌아오는 차에서도 계속 느껴졌다. 몇 주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는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이윤정 교수 (강원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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