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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무한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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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일본 초대 조선 총독이었고 우리나라의 일제 식민지화에 큰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진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째 아들 안준생이 1939년 10월경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을 만나 아버지의 일을 사죄하였고 이 신문기사가 일본의 선전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점(백범 김구 선생이 안준생을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단할 것을 명령했다는 이야기, 일본의 미나미 지로 총독의 양아들이 되어 일제 강점기에 편히 살았다는 이야기 등이 있는데, 역사적 증명이 가능한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적어도 아버지 안중근과 상반된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중근 의사 사후, 일제는 그 가족들에 대해 숱한 탄압을 하였고 끊임없는 협박과 감시 때문에 중국으로 갔는데, 안중근 의사의 큰 아들은 만주에서 누군가에 의해 독살을 당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비극은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친일활동을 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암흑기에 살았더라도 달랐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해방이 될 줄 몰랐으니까.” (영화 ‘암살’에서 나라와 동료를 배신한 엄석진이 해방 후 동료들에게 총을 맞기 직전의 대사) 

“너는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것 같냐? 어차피 기울어진 배야.” (영화 ‘밀정’에서 독립투사 앞에서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이 한 대사) 

 

영화 속 대사긴 하지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36년 동안 절망적인 순간이 계속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과 독립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도 정말 어려운데, 나아가 자신(가족 포함)의 인생과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몇 마디 말로 다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하고 위대하고 숭고한 일이다. 이 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독립은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친일을 비난하기에 앞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을 찾아 그 후손들에게 합당한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였는지를 살피는 데에 시간, 노력, 돈을 더 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정부와 국회는 이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 왔다고 하겠지만,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나 후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 왔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았다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증거에 기한 사실조사가 필요하고, 입법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예산을 확보하고 실제 행정행위에 이르러야 하는데, 법률가야말로 이러한 업무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야말로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고도 국민통합과 애국심을 고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광복절(光復節)의 광복은 글자 뜻 그대로 '빛을 되찾다'는 의미이다. 우리와 같은 후손들에게 빛을 되찾아 누리도록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바친 분들에게 끊임없이 감사하고 그 가족과 후손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야말로 '무한광복'일 것이다. 그래야 국가적 위기가 오더라도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단숨에 극복하지 않을까?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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