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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년시대

차별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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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내 생애 첫 유럽이었다. 아내도, 아이도 마찬가지. 곧 불혹이 됨에도 어린 아이처럼 설렜고, 다니는 곳곳이 흥미로 가득했다. 국내에도 좋은 곳은 참으로 많지만 모든 장소가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들르고 싶은 곳으로 남았다.


이처럼 좋은 추억을 가득 안겨준 유럽이었지만 딱 하나의 안 좋은 경험이 있다. 여행의 중간에 경험한 그 일은, 그 당시에도 굳이 담아두려고 하지 않았고, 귀국해서도 다시 떠올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행의 중간에는 남은 일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어쨌든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 왔는데 굳이 그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유인인 내가 아닌 변호사인 나를 생각하면 이 경험에 대하여는 좀 더 깊게 생각해볼 일 같기도 하다.

나는 유럽의 모 처에서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는 식당에 들렀다.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직원은 응대가 아주 좋았다. 우리 옆 테이블의 손님에게 맥주를 서빙할 때도 직접 맥주 잔에 따라주기도 하였고, 그 손동작 하나까지 이것이 이 나라라고 느끼게 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직원이었다. 분명 백인, 심지어 아랍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히 자리 안내를 하고, 가게로 들어올까 말까 하는 손님들을 붙잡고는 음식에 대하여 홍보도 하고, 주문도 친절히 받고, 웃으며 음식을 서빙하던 직원이었는데, 그 코 앞에서 수 차례 주문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다른 직원을 통해서 주문을 하였는데, 문제의 그 직원은 우리로부터 주문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Easy, easy. We have time” 이러며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바빴고, 가져온 맥주는 서빙하지 않았다. 분명 다른 테이블 손님들에게는 직접 맥주 잔에 맥주를 따라줬으면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유럽이 처음인 나는 모든 경우에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과거 교육의 영향일까? 나가서 나라 망신 시키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계속 계속 상황을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이건 분명했다. 인종차별.

국내에서 겪었던 각종의 차별은, 내 생각엔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찌되었든 명분이라도 있었다.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차별은 언제든 항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어딘가. 나는 난생 처음 온 곳에 있었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며, 국가의 보호를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지는 모르고, 거창하게 국가력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작은 사안 아닌가. 차별하는 자는 내게 굳이 명분을 내세울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제야,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차별은 그 외관의 크기를 떠나서 이유 없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소박한 식사를 하며 지불할 수 있는 팁은 통상의 경우보다 좀 더 많았음에도, 그냥 돈 잘 쓰고 다니면 여행지에서 인종차별 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고, 그런 차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거 하나 제대로 바로 잡지 못하겠냐고 한 내가 어리석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나는 어떤가. 인생이 힘들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임대료에, 직원들에, 나 믿고 같이 일해보겠다고 하는 변호사 월급에 매 달의 벌이를 신경써야 하고, 가정사에, 수임한 사건의 해결에, 자라나는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고, 일과 가정 모두에 매진하는 아내의 고생에 가끔 그저 울고 싶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늘 버겁고, 늘 미안하다.

그렇지만 나는 존재 자체로 차별 받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간혹 존재만으로 차별하려는 부류가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여기서는 그런 부류를 깃털 같은 존재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런 나이니 내가 과연 ‘차별’에 대하여 얼마나 깊게 생각해봤을까. 차별 당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차별 금지는, 배부른 변호사가 생각하는 차별 금지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차별을 생각해보았다. 당장의 글로 뭔가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기엔 많이 부족하겠지만 앞으로도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김연기 변호사 (법률사무소 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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