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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제국의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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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 골든(Arthur Golden)의 소설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은 영화화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소설은 일본 어촌마을 소녀의 굴곡진 인생을 그렸다. 가난에 찌든 늙은 어부는 아내의 병마저 위중해지자 큰 딸은 사창가에, 막내딸은 기생집에 팔았다. 이야기는 막내딸의 사연으로 일관한다. 소설에는 잠깐 그 시대 ‘게이샤’의 사회의식(?)도 등장한다. 어느 날 장교들에게 술을 따르며 ‘어촌 출신 계집인 나도 국가를 위하여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막바지, 전 국민이 대미항전(對美抗戰) 의욕으로 충만하였을 테니 이해할 만하다.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집었다. '제2판 34곳 삭제판'이라는 빨간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 출판사의 마케팅 의도는 읽혔으나, 황당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수소문하여 삭제 전 원본을 구했다. 도대체가 삭제된 내용에서 ‘삭제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내친 김에 박 교수의 전작(前作) '화해를 위해서'도 펼쳤다. 일본 유학 초기 위안부 프로젝트 ‘통역’을 하였던 그는, 사료(史料)를 기초로 한·일의 균열을 봉합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2005년作 '화해를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도 선정되었다. 

 

'제국의 위안부'는 ‘소녀상’ 이미지의 일반화(generalization)에 반대한다. 식민지 시대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을 기획하였고 간혹 이동 편의도 제공하였겠으나, '군과 경찰'이 14세 소녀를 총검으로 위협하여 끌고 간 상황의 ‘일반화’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20세 전후의 여성들이 업자(業者)를 통하여 취업한 사례가 많고, 소설 'Geisha'처럼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 딸을 팔았던 사례도 보이며, 속아서 따라갔다가 군 당국의 확인으로 귀향하거나 그들의 주선으로 달리 취업을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업자의 일탈행위는 충분히 예상되고, 업자의 접대로 행정 말단 조직이 움직였을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어쨌든 전시 적국인 중국, 네덜란드 여성들에 대한 가혹행위와 제국 2등 자국민에 대한 처우를 혼동하면 한·일간에 화해가 불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우리사회는 ‘다른’ 이야기를 듣는 데 몹시 인색하다. ‘소녀상’에 대한 통념은 위안부 운동가들이 ‘실수로’ 만들어 냈을 가능성이 있다.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 여학생 이미지는 근로정신대와는 겹친다. 제국주의는 2차 대전 종반에 ‘여자정신근로령’으로 어린 여학생들을 동원하였다. 법령에 의한 동원이므로 강제력과 할당이 있었을 것이고, 학교를 살리기 위하여 울면서 공장으로 갔다는 증언도 나온다. 

 

'안네의 일기'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나가던 2015년 무렵 이야기이다. 안네 프랑크는 1945년 독일의 항복 직전 가스실로 끌려갔다. 아버지는 위기를 모면하고 1980년에 세상을 떴다. 저작권 수입으로 운영되던 안네 프랑크 재단이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1947년 '안네의 일기' 초판을 낼 때 아버지가 문장에 손을 댔으므로, 아버지 기준으로 ‘사후 70년’ 보호기간을 적용하여야 하니 2050년까지 보호기간이 남아 있다고 우겼다. 재단은 스스로 민망하였던지 저작권 수입으로 공익활동을 하겠다고 변명하였다. 화가 난 낭뜨 대학 선생과 프랑스 국회의원이 인터넷에 네덜란드어 전문을 올리면서 소동이 잠잠해졌다.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통독하였다고 믿지 않는다. 그분들이 스스로 분노하여 변호사를 선임하고 가처분신청, 명예훼손 고소, 민사 위자료 청구를 하였을 것 같지도 않다. ‘운동’이 권력이 되고 정책이 되었다. ‘소녀상’ 이미지 뒤에 숨은 운동가의 욕망이 부질없는 소송을 기획하였지 싶다. 항소심 형사 유죄 판결문에서 중세 종교재판 분위기가 묻어났다.

 

 

홍승기 원장 (인하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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