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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나의 여행기] 이탈리아 피렌체 다녀온 이옥경 변호사

저녁놀 붉게 물든 피렌체… 평화로운 풍경에 넋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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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두오모의 외관은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라는 이름에 꼭 어울리는 화사함을 가지고 있어 누구든지 순간 걸음을 멈추게 한다.

 

 겨울 이탈리아 기차 여행. 나는 올해 1월 1일이 되자마자 새로 생겨난 연차를 몽땅 써서 이탈리아로 떠났다. 겨울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나의 독일인 상사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시아인들은 참 괴상하다’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왜 우중충한 겨울에 유럽을 가는지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호텔들은 난방이 잘 되지 않으니 옷을 단단히 챙겨가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어디서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웅장한 두오모 성당 


로마에서 피렌체,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를 거쳐 밀라노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과연 겨울의 이탈리아는 춥고 해가 빨리 졌지만 산타마리아 노벨라역에 내려 피렌체의 끝없이 물든 노을녘을 바라보는 순간 저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수고로움은 한 순간에 잊혀졌다. 낮고 예쁜 붉은 지붕 건물들 위로 본 적 없을만큼 넓고 높은 붉은 하늘이 펼쳐졌다. 어딘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탁 트인 넓은 하늘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울퉁불퉁한 돌길에 가방을 세차게 끌면서도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그 풍경에 자꾸만 눈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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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골목골목을 누비며 돌과 흙과 바람을 느끼다보면 세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불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피렌체의 시내는 그리 넓지 않아 대부분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래서 여행자들은 별 수 없이 여유롭게 골목 구석구석을 걸으며 도시를 탐험하게 된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걸었을 베키오 다리에서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두오모 쿠폴라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골목의 돌길 사이로 가죽 공예점들이 보이고, 연말연시의 화려한 장식들이 달린 젤라또 가게가 줄지어 있다. 이 작고 아름다운 도시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세기에 남을 작품을 남겼다. 이들이 사색하고 걸었던 거리를 탐험하면서 나는 엉겁결에 주어진 이 여유로움이 선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464개 계단 따라 쿠폴라에 오르면

끝없는 붉은 지붕 

 

높은 건물이 없는 피렌체에서 어디서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웅장한 건물이 바로 피렌체의 두오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좁다란 골목길을 벗어나 탁 트인 광장으로 나오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 두오모는 누구든지 순간 걸음을 멈추게 될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흰색, 분홍색, 녹색의 대리석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외관은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라는 이름에 꼭 어울리는 화사함을 가지고 있다. 이 빛을 가득 머금은 성당의 외벽을 따라 걸으면 천천히 쿠폴라가 나타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두 주인공이 만나기로 약속했던 그 유명한 쿠폴라다. 붉은 벽돌의 거대한 돔은 높이가 106m에 지름이 45.5m에 이르는데 아무런 지지대없이 벽돌로 완공하였다고 한다. 실로 한 시대의 혁신과 조우하는 순간이다. 464개의 좁다란 계단을 쉼없이 올라야 하지만, 쿠폴라에 올라 피렌체의 붉은 지붕들이 끝없이 내려다 보이는 전경을 보노라면 그 수고가 모두 잊혀진다.

 

로밍도 잘 안 되는 골목마다

르네상스 시대 향수가


두오모에서 산 조반니 성당, 시뇨리아 광장까지 둘러보며 걷다보니 스며드는 추위에 따뜻한 음료 한 잔이 간절했다. 근처 커피숍에 잠깐 들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물론 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혐오하는 ‘물 탄 커피’ 아메리카노를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여행지에 왔으니 이 나라 법을 따를 수밖에. 이탈리아는 커피 자부심이 대단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위는 팔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는 능숙하게 이탈리아 사람들을 흉내내어 에스프레소를 받아 선 채로 마셨다. 쌉싸름하면서도 강렬한 커피향이 온 몸에 퍼지면서 추위가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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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식 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는 씹는 순간 부드러운 육즙과 고소한 기름기가 폭발적으로 퍼진다.

 

피렌체에 오면 꼭 먹어보아야 할 요리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라는 전통요리이다. ‘T’자 모양의 뼈를 기준으로 한 쪽은 안심, 나머지 한 쪽은 등심이 있는 부위를 통째로 두툼하게 구워내 먹는 피렌체식 스테이크인데, 겉면만 바삭하게 익힌 상태에서 뜨거운 그릇에 내어 먹는 중에 조금씩 더 익은 스테이크를 맛 볼 수 있다. 씹는 순간 부드러운 육즙과 고소한 기름기가 폭발적으로 퍼지는데, 이 때 이 지역의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로 기름기를 잠재우면 멋진 한 끼 식사가 된다.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커피 향의 여운은

아직도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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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거리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필자.

 이탈리아 음식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와인이다. 이탈리아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비옥해서 전 지역에서 포도가 재배되고, 지역별로 수백가지의 와인이 생산되는 ‘와인 대국’이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3대 와인생산지인 토스카나의 주도로, 다양한 지역 와인을 맛보기에 매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토스카나의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로 엄격한 전통 방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키안티 클라시코는 토스카나 지방의 요리와 훌륭한 마리아쥬를 보여준다.


나는 그렇게 피렌체에서 매일 걷고 먹고 마시고 또 걸었다. 천천히 골목골목을 누비고 돌과 흙과 바람을 느끼며 오롯이 내 두 다리로 걷는 원초적인 충만함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과거를 사는 도시’라고 표현한 것처럼 정말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의 오랜 도시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로밍은 물론이고 와이파이도 잘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세상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해방되는 불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인간 본연의 생활에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나는 피렌체를 떠나 베네치아와 밀라노를 여행하면서도 문득문득 피렌체가 떠올랐다. 우연히 들어선 가게에서 선 채로 커피를 입에 털어넣었던 일상적인 기억들이 가득한 곳.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풍미처럼 나에게 피렌체는 아직도 여운이 가득하다.


  

이옥경 변호사 (한국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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