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고독과 공감(下)

154849.jpg

‘나는 이 책을 지금은 어른이 된 어린 시절의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작가가 어른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했음에도 어른이 되기 전에 한번쯤 읽어 보는 책, ‘어린왕자’의 가슴 뭉클한 헌사입니다. 저 같은 경우 사실 법상 미성년을 벗어난 직후에 처음 읽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읽은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불어 공부를 한답시고 불어로 된 책을 읽었기에 속뜻도 모른 채 아이처럼 그림 위주로 읽었던 것을 늘 아쉬워하고는 했습니다.

 

그날 오전, 오후 내내 단절과 가식에 대한 이야기들로 인해 푸석한 초록사과를 씹는 느낌이었는데, 헌사를 읽자마자 갓딴 서늘한 레드향 한알을 입속에 터뜨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헌사에도 감동하여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을 보니, 진짜 ‘어른’이 되고 말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잠든 어린 왕자가 이토록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건 꽃 한송이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마음, 자는 동안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꽃 때문이야….’ 소설 속 추락한 비행기 조종사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 그 무엇이 현실 속 제 심장을 쥐어짜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울리는 소리, ‘↑똑!’. 내용은 ‘부장님, 어제 구속영장 청구한 사건은 영장 발부되었습니다∼’ 상냥한 그 부원은 문장 끝에 ‘∼’를 붙입니다. 칼로 동료의 손가락을 너덜하게 만들고 수년간 해외도피했다가 입국하여 체포된 중국인이었습니다. 그 중국인도 어린시절엔 마음속에 한 송이 장미꽃이 빛나고 있었을지 모를텐데…. 검사와 어린왕자는 안 맞는 모양입니다.

 

어떻습니까. 한 집에서도 누가 뭘하는지 모르는 ‘고독’, 좋은 집을 얻기 위해 힘들게 만들어 낸 ‘관계’, 마당에 핀 5000송이의 장미꽃에서도 마음 속 한 송이 장미를 찾아 보듬는 ‘공감’, 법조 일상에서 접하는 평범한 직업적 ‘소통’이 뒤섞인 저의 하루에서 함께 하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원에게 ‘수고했어. 주말 잘 보내삼’이라고 답을 했는데, 그 답은 이 네 가지 중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권상대 부장검사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관련 법조인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