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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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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법 제44조의 법문언(法文言)이다. 제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등, 노면전차 또는 자전거를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음주운전 금지가 아니라 술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금지로 읽힌다. 물론 제4항에 운전이 금지되는 술에 취한 상태의 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 0.03퍼센트 이상인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보통 술을 조금 마신 사람은 ‘나 안 취했어, 운전 못할 정도는 아냐’라고 말한다. 법적 금지기준인 객관적 수치 0.03% 이하인지 그 이상인지 모르지만 주관적으로 ‘취하지 않았어’라거나 감으로 ‘멀쩡해’라고 판단하는 거다. 그래서 술 마시고도 운전하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로교통법은 1962년 시행 당시부터 ‘주취(酒醉)’ 중 운전금지(제39조)였다. 2006년 전면 개정하면서 ‘주취’를 순 한글 ‘술에 취한’으로 바꿨을 뿐이다. 이로써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할 상황은 ‘술에 취했을 때’라는 잘못된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통상 우리의 언어 용법 상 ‘취했다’하면 어느 정도 많이 마신 상태를 말한다. ‘주취감경(酒醉減輕)’의 그 ‘주취’이므로 웬만큼 마신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소주 한두 잔 또는 맥주 500cc 정도 마신 사람은 ‘나 술 취했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느끼지도 않는다. 음주측정기로는 0.03% 이상이 나와도 술에 ‘취한’ 상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시고도 운전대를 잡아도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음주운전 인명피해 사고의 처벌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이 제정되고 음주단속기준이 강화된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음주운전 사고가 끊이질 않고 음주단속에 걸리는 운전자가 적지 않은 이유다.

 

도로교통법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라 ‘술을 마신 상태’여야 한다. 그래야 술을 마셨다면 취했든 멀쩡하든 운전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너무 엄격하니 0.03% 미만은 허용하는 것이라고.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가 “금지된 운전은 ‘술에 취한 상태’인데, 나는 술에 취하지는 않았어”라고 항변하면 어떡할 것인가. 위헌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0.03%를 술에 ‘취한’ 상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가. 과연 0.03%를 술에 취한 상태로서 금지하는 음주운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술 마신 상태에서의 운전은 맞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강화된 단속기준 0.03%가 너무 낮아서 가혹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제1항의 술에 ‘취한’ 상태를 ‘술을 마신’ 상태로 변경하자는 얘기다. 현행 제44조의 1항과 4항은 상호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다. 이렇게 개정해야 술 마신 상태에서 운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서고, 다만 예외적으로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면 허용해 주는 것으로서 원칙과 예외가 분명해질 수 있다. 그래야 ‘음주’운전 금지가 더 효과적일 수 있고, 국민에게 와닿는 계도가 가능해질 것이다. '사람마다 술 취한 정도가 다르니까 나는 괜찮겠지' 가 아니라 술을 입에 대는 순간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금지된 음주운전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이 아니라 술을 ‘마신’ 상태에서의 운전이어야 한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