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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프리즘

법리상 어쩔 수 없다는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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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말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동기는 요즘 맡고 있는 사건들이 주로 억울한 사람들을 대리하는 것이라 그 점에서는 마음이 편한데, 법리상 구제 가능성이 낮아 보여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답답하다는 말을 했다. 사건을 해결해서 가해자들이 편취한 돈을 받아오고 싶지만 막막하다고 했다. 그 말끝에 가해자들을 향한 욕설도 덧붙였다.

 

며칠 뒤 술자리에서 그 친구는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제재의 정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현행의 법적 제재가 약할 뿐만 아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도 적절하지 않다면서, ‘눈에는 눈+α, 이에는 이+β’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눈을 해쳤다면 그 가해자에게는 눈에 더하여 다른 무엇도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은 ‘법학을 공부하는 동안 어느새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힌, 그래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형벌의 목적론이나 정의 관념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억울하더라도 종종 지금까지 정립된 법리나 판례에 비추어 해결하기 난감한 사건들이 있다. 혹 구제할 방안은 있더라도 구제 정도가 미약한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변호사는 답답함을 꾹 참고 기존의 법 해석론을 뚫어야 한다. 원하는 해석을 뒷받침할 근거를 끊임없이 찾고, 독자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주장하고 논증해야 한다. 그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법 해석 결과물이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그 결과물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기존의 법리에 안주하려 한다. 피해자의 딱한 사정을 짐짓 이해하는 척하면서 신봉하는 법적 도그마에 기대어 억울해 하는 피해자를 향해 오히려 법리를 모른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대학 때 한 선배에게 수업시간에 배운 상속포기와 사망보험금 귀속에 관해 얘기하면서 피상속인의 채권자들이 억울해도 법리상 어쩔 수 없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는 진지한 얼굴로 채권자들의 억울함을 헤아려 보라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학부 시절 그런 조언을 들을 수 있어 고마웠다. 답답해하는 내 친구도 아마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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