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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통치행위의 사법적 통제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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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반도체, TV, 스마트폰제조에 쓰이는 3대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가 한국기업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바, 아베 총리의 이러한 무역보복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의 대한(對韓)무역보복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본상품의 불매운동 등 대일(對日)감정을 유발하는 행위는 갈등만 증폭시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의 현명한 외교적 해결책만이 그 정답이라고 본다. 

 

작금의 사태는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조약 제172호·이하 '청구권협정'이라 함)과 달리 일본기업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해 일본의 반발을 초래한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과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1.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적 심사여부

국가통치의 기본에 관한 고도의 정치성(政治性)을 띤 국가행위로, 사법부에 의한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적당하다고 하여 사법심사권의 적용범위에서 제외되는 행위를 통치행위라고 한다. 법치주의가 확립된 선진국에서도 일정한 범위에서 정치성이 강한 국가행위(예: 조약체결, 대통령의 국가승인 내지 정부승인 등 외교에 관한 문제, 계엄선포 등)를 법원의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행위로서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로운 행정의 영역을 말한다.

 

통치행위는 법과 정치와의 교차점, 즉 법률문제와 정치문제의 혼재영역(混在領域)이라고 볼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를 통치행위, 독일에서는 재판에서 자유로운 고권(高權)행위 또는 통치행위, 미국에서는 정치문제, 영국에서는 대권(大權)행위, 국가행위라는 이론으로 주장되었고, 또한 재판에 의하여 승인되었다. 학설과 판례는 이를 인정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나 제한적인 경우에 한하여 이를 인정하려는 경향이다. 

 

대법원은 ‘구헌법(1972. 12. 27. 개정헌법) 제53조에 규정한 대통령 긴급조치는 헌법적 효력이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적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대판 1978. 5. 23. 78도813)’, ‘대통령의 계엄선포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띠는 행위라고 할 것이어서, 사법기관인 법원이 계엄선포의 요건구비나 선포의 당부(當不)를 심사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內在的)인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 적절한바가 못된다(대법원 1979. 12. 7. 79초70, 1981. 4. 28. 81도874)’라고 하여 통치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2.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
(1) 다수의견 및 이에 대한 비판

원고들이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판결(2018. 10. 30. 2013다61381)의 다수의견{대법원장 김명수(재판장), 대법관 김소영(주심),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 김재형, 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은 “일제강점기에 기간군수사업체인 일본제철 주식회사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한 甲등이 위 회사가 해산 된 후 새로이 설립된 신일철주금 주식회사를 상대로 위자료지급을 구한 사안에서, 甲등이 주장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러한 다수의견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과 관련해 볼 때,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첫째,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에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 한다’(제2조 제1항). ‘…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제2조 제2항).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제3조 제1항).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제4조 제2항)’라는 청구권협정의 제반규정에 각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견은, 청구권협정이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포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했고, ‘다른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는 것 및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하며’, ‘본 협정은 비준서가 교환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한 청구권협정에 따라,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 간의 분쟁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할 사항이므로, 청구권협약 제2조 제1항, 제3항 및 제3조, 제4조 등에 각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다수의견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1969.5.23. 비엔나에서 작성, 1980.1.22. 조약 제697호,1980.1.27. 대한민국에 대하여 발효, 이하 '비엔나협약'이라함)의 ‘조약은 그 조약이 규정하거나 또는 교섭국이 협의한 그 일자에 발효 한다’(비엔나협약 제24조1) 또는 ‘약속은 준수되어야 한다. 유효한 모든 조약은 그 당사국을 구속하며 또한 당사국에 의하여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한다’(비엔나협약 제26조)라는 규정에 각 위배된다고 본다.

 

셋째, 조약의 준수의무를 규정한 비엔나협약 제26조와 같이, 조약의 이행은 체약국간에 신의와 성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조약의 체약국은 상호간에 신의와 성실로서 조약상의 권리와 의무를 준수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선린우호(善隣友好)와 신뢰를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견은 국가 간의 외교에 있어 준수할 신의칙(信義則)을 위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조약의 체결 . 비준은 국가통치의 기본에 관한 고도의 정치성을 띤 대통령의 국가행위로, 사법부에 의한 법률적 판단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적당하므로, 다수의견은 우리 대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통치행위에 관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1964. 7. 21. 64초4, 1978. 5. 23. 78도813, 1979. 12. 7. 79초70, 1981.4.28. 81도874)에도 저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법권의 기능, 성격상 고도의 정치성을 띤 대통령의 외교, 조약의 체결·비준에 관련된 문제는 이른바 통치행위로서, 소송절차에 의해 법원이 판단을 내리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소수의견 및 이에 대한 비판

다수의견에 대한 소수의견(대법관 권순일, 조재연)은 “청구권협정 제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은 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甲등이 일본 국민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라고 했다.

 

소수의견에 찬성하나,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제3항에 의하여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포함)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다른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제3조 제1항에 의하여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국 간의 분쟁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고 합의했으므로, 원고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반대의견을 명확히 표시 했어야 할 것이다.


3. 조약의 성실한 이행

조약이라 함은 국제법 주체 간에 국제법률관계를 설정하기 위하여 서면형식으로 체결되며,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를 의미한다{비엔나협약 제2조 1.(a)}. 조약이라는 용어는 구체적으로 조약이라고 명시한 국제적 합의에 한정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나 국제법 주체간의 모든 형태의 명시적 합의를 총칭하는 넓은 뜻으로 쓰인다. 이들 명칭(조약, 협약, 협정)의 차이가 합의의 내용이나 효력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엔나협약은 국가 간의 조약에 적용된다(동 협약 제1조). ‘조약은 그 조약이 규정하거나 또는 교섭국이 협의하는 방법으로 또한 그 일자에 발효하며(동 협약 제24조 1)’‘유효한 모든 조약은 그 당사국을 구속하며 또한 당사국에 의하여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한다(동 협약 제26조)'‘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국내법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 된다’(동 협약 제27조)라고 비엔나협약은 규정하고 있다.


4. 국가 간의 약속과 신의칙의 준수

국제법은 자연의 이성(理性)에 기초를 두고 다수 국가간에 체결된 조약 또는 국제관습법이다. 즉, 실정법(實定法)으로서의 국제법은 조약과 국제관습법인바, 이를 국제법의 연원(淵源)이라 한다.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헌법 제6조 제1항),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한다(헌법 제73조). ‘약속은 엄수해야 한다(Contracts are to be kept)’는 격언은 국제법상의 원칙으로서 조약체결국간의 합의의 법적타당성의 기초가 되는 근본규범이다. 이 원칙이 모든 조약의 효력을 준수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국제법 관계에서 모든 국가에 의하여 인정되고 있다. 국가 간의 약속은 반드시 이행되고 준수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일 양국정부로부터 정당한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가 서명한 청구권협정은 양국 간의 조약으로서 이에 관련된 사항은 이른바 '통치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사법적 통제(司法的 統制)를 받지 않는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최돈호 법무사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