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영국이란 나라

154476.jpg

거의 30년만에 경제학원론을 볼 일이 있었다. 그동안 경제학이 많이 발전한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중시했던 애덤 스미스, 20세기 대공황의 원인을 유효수요 부족으로 진단하고 재정정책 등 국가의 개입을 강조했던 케인즈가 경제학이라는 족보책의 시조와 파조로서 대접받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알고도 지나친 부분이 있다면 이들이 모두 영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은 의회주의의 나라였다. 의회가 국가권력의 최고중심이었다는 점에서 19세기 영국의 의회주의는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디즈레일리의 보수당, 글래드스턴의 자유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팍스-브리타니카 시대를 열었는데, 초선의원 시절 글래드스턴이 아편전쟁을 반대하면서 한 의회에서의 명연설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대영제국의 팽창과 더불어 하나의 법률직업이 따라 발달했다. 바로 배리스터에 대비되는 솔리시터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실상 법무사에 매우 가깝다. 당시 법학 학위에 관계없이 시험만 통과하면 솔리시터가 될 수 있었고, 이들은 세계로 뻗어나가 19세기 영국 자본주의 발전의 숨은 공로자가 되었다. 당시 영국과 우리는 왜 인연이 없었을까. 아편전쟁 후 영국은 인도경영에 몰두하다 보니 한반도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여력이 없었고,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점령한 거문도에서도 철수해야만 했다.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처칠의 말은 인도가 그만큼 영국에게는 사활적 이익이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만일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지 않았다면 그 여력을 한반도에 쏟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리되면 부들러의 주장처럼 영세중립국은 아니더라도, 최소 한반도에서 영국의 밸런서 역할에 힘입어 조선의 독립이 유지되고, 지금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강제된 독일법계가 아니라 영국법계 국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역사적 가정을 해본다.

 

아무튼 이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뿐만 아니라 영국의 법과 제도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근수 법무사 (서울중앙회)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