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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공정(公正)'한 민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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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법(私法)체계의 기초인 민법은 '공정(또는 불공정)'과 관련하여 제104조에서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판례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주관적으로 그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악의)"고 하고, 그 중에서 '궁박'은 급박한 곤궁으로 한정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불공정'을 이유로 법률행위가 무효가 된 사례는 드물다. 민법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가 자유롭게 합의한 것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대원칙을 전제로 하므로 이와 같은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규정의 문언과 판례에 의하면 "객관적으로 현저하게 균형을 잃을 정도의 법률행위와 그에 대한 고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이 있고 이를 이용하려는 악의까지 있어야 불공정 무효가 된다"는 점에서, 민법은 '현저히 균형을 잃지 않을 정도의 불공정한 법률행위', 나아가 '(나머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고의가 있더라도) 현저히 균형을 잃은 법률행위'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를 '공정한 사회에 부합하는 민법'으로 볼 수 있을까? 불공정한 처우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민법 제104조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도 한다. '일반인이 납득 못하는 불공정의 기준'이 올바른 것일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혹시 '법률행위의 무효는 거래질서의 안정성을 해치므로 그 요건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불공정한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는 경우와 취소로 하는 경우를 나누어 취소에 대한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어떨까? 

 

한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불공정거래행위' 규정(제23조)이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은 모든 민사사안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만 규제하며,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유형화하여 열거하고 있을 뿐이다. 형식적으로 보충적 일반조항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실제 적용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개별거래의 성격이 짙은 사건에 대해 실무상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조사를 해서 위법성을 인정하고 시정명령을 하더라도 가해자가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하면 판결확정을 기다려야 하고, 확정되더라도 피해자는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므로 손해보전을 신속하게 받지 못할 수 있다. 물론 민사소송을 병행하여 진행할 수 있지만, 재판부에 따라 행정처분 또는 그에 대한 행정소송의 결론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는 '불공정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

 

정부는 불공정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민법 개정으로 불공정한 법률행위의 요건을 완화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민사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민법'에서부터 '공정'의 기준을 바로 정립할 수 있다면 경제활동의 기본원칙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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