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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고독과 공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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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공감에 관한 네 가지 경험이 뒤섞인 특이한 하루였다.

 

그날 오전, 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 50페이지가 남아 있었다. 마꼰도 마을을 개척한 부엔디나 가문 6세대의 백년에 걸친 삶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다. 

 

만연체에다 한 문장에서도 과거∼현재∼미래가 오가고, 현실∼비현실을 넘나드는 독특한 어법이라 ‘읽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 시대 100인의 지식인이 가장 많이 추천한 소설이라는 기사를 2주간 떠올리며 인내했다. 

 

읽을 때는 힘든데 기억에 남는 책이 이런 책인가 했다. 고립되어 평화롭던 마꼰도 마을이 보수파와 자유파의 내전으로 파괴된다. 내전 후 건설된 철도와 바나나농장은 노동자와 정부의 대립으로 파괴된다. 끝없는 장마와 가뭄으로 마을은 처음처럼 다시 고립되고, 가문의 주역들도 각자 공간에 고립되어 죽는다. 마을도, 사람도, 백년의 역사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날 오후, '추락(NOSEDIVE)'이라는 영상물을 보고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블랙미러'라는 시리즈물 중 한 시간 분량의 독립 에피소드다.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상대방의 태도나 자세를 보고 평점(만점 5점)을 준다. 호의적인 행동을 하면 높은 평점을, 불쾌한 행동을 하면 낮은 평점을 준다. 평점은 즉각 반영되고, 상대방의 평점은 특수렌즈로 바로 알 수 있다. 평점에 따라 경제적 혜택과 복지서비스가 달라지므로, 다들 평점에 목을 맨다. 

 

주인공은 평점 4.2의 괜찮은 평점을 갖고 있지만, 꿈에 그리던 집을 갖기 위해 필요한 평점 4.5를 얻으려고 처절하게 고군분투한다. ‘영혼없는 친절’로는 부족하다. ‘영혼담긴 친절’로 보이기 위한 온갖 기교를 매번 고민한다. 애처로운 노력에도 주인공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결국 모두로부터 고립된 채 감옥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근대판, 미래판 고독의 음울한 여울에 종일 발 담그고 있던 그날 저녁, 거실에는 '백년의 고독'과 함께 샀던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첫페이지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 제발 읽어달라는 듯이 푸덕이고 있었다. 모자에 삼켜진 코끼리를 보니 옛 추억에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권상대 부장검사 (제주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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