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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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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쏘 변호사로 일할 때의 일이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배당 받았다. 피고의 자리에서 적극 방어하여야 할 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 망자가 되어 버렸고, 황망하게 남편을 잃고 상속인으로서 피고의 자리에 선 유족은 원고들과 망자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밤늦게 사무실에 혼자 남아 항소이유서를 준비하면서 망자의 행적을 재구성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서늘한 기분이 들면서 망자가 옆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로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걱정이 될까. ‘내가 당신 대신 열심히 도울 테니 걱정말라고, 그리고 당신도 열심히 도우라’고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고등법원 첫 변론기일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을 신청하였다. 돈의 흐름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하면 1심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장님은 ‘투망식’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은 안 된다며 대부분의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신청을 기각하였다. 

 

민사 재판이었음에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망자는 말이 없습니다. 원고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응하여 항변해야 할 주체는 사망하였기 때문에 아쉽게도 변론주의를 관철하는 것이 사실상 불능이 된 상황입니다.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신청을 받아주십시오”라고 요청하였다. 재판장님은 “어허, 대리인 감정에 호소하지 마세요. 앉으세요”라고 하였다.“재판장님! 금융거래정보가 꼭 필요합니다.” “어허, 거참. 앉으세요.” 금융거래정보제출명령신청은 결국 기각되었지만, 관련 형사사건 문서송부촉탁신청은 받아들여졌고 엄청난 양의 형사기록을 복사하였다. 다행히 관련 형사기록에서 원하는 금융자료를 찾을 수 있었고, 결과는 뒤집기 한판승이었다. 승소 판결 후 망자에게 말했다. 결국 이겼다고. 이렇게 이길 수 있었는데, 왜 돌아가셨냐고. 이제 가족들 걱정 말고 편히 쉬시라고. 

 

매일 누군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약 영혼이라는 형태로 존재가 계속된다면 더욱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죽어보기 전에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으니, 죽지 말고 끝까지 싸웠으면 좋겠다. 필자도 生者의 대리인이 되어 함께 싸울 것이다.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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