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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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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법관윤리강령 전문의 일부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더욱 강조되어야 할 법관의 덕목이다.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합리적 의심이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요청했지만 위헌 소지를 이유로 한 저항이 만만치 않아 물 건너갔다. 이제 사법부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한 재판을 해내야 하는 낭떠러지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아직도 사법부 내에 사법농단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법관들이 적지 않아 그들이 재판부를 구성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저 공정한 재판을 위한 법관의 직업윤리에 기대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정의의 참모습은 공정함이지만 외관상 공정하게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여전히 숨어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재판의 공정성은 사법의 핵심이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고 법 앞에서는 공평하다는 믿음이 사법신뢰의 핵심이다. 사법권의 독립도 결국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헌법적 보장이다. 지금의 사법 불신은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심이다. 공정성(fairness)과 불편부당성(impartiality)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사법의 권위는 사라지고 더 이상 사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법관의 제척·기피·회피 제도가 왜 필요한가. 공정한 재판을 위함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debet esse judex in propia causa).” 법관이 해당 사건과 특별한 이해관계로 얽혀있거나 법관이 당사자와 특수한 사적 관계에 놓여 있다면 아무리 판결내용이 공정하고 정의롭더라도 공정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제척·기피·회피 제도는 민사소송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 행정소송, 헌법소송 등 모든 재판에 통용되는 공정성 담보장치다.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단순한 주관적 우려나 추측을 넘어서 객관적 사정에 근거한다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인정되어야 한다. 사건과의 관련성 같은 회피 사유의 존재가 명백한데도 이를 외면했다면 회피 의무 위반이다. 법관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중대하게 침해되었음에도 판결은 그대로고 상소이유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척·기피·회피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한다. 신청 건수 중 인용되는 건수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법관 개인의 위신 때문이라는데, 절차적 공정성을 갉아먹는 우를 범하는 꼴이다. 지금 사법부 신뢰는 극도의 위기상황이다. 외부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훼손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사법권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크게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전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전·현직 법관들이 피고인으로서 또는 증인으로서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게 된 상황은 그 재판이 법과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인지 감시하는 시민의 눈을 부릅뜨게 한다. 그러므로 불공정한 재판의 염려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법관의 위신과 사법의 권위를 염려할 것이 아니라 재판의 공정성을 도모하는 수준 높은 법관 직업윤리가 발휘되어야 한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미국변호사